<사진= 박창희 칼럼니스트>

[LPN로컬파워뉴스] 칼럼니스트, “眞藏假出진장가출”

역사는 그 민족의 혼이고 얼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역사를 왜곡 해 놓아 우리는 지금 식민사학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뜻있는 역사학자들은 일제의 왜곡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더 왜곡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주장에 지지를 하는 바이다. 또한 우리가 1980년대에 민족의식이 그 싹을 틔우고, 지금은 우리의 국력 신장만큼이나 민족의식도 살아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민족을 위한다는 假學者가학자 들이 앞에 나서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學問학문은 학문으로 해야지 학문을 愛國心애국심으로 하려 든다면 오히려 민족의 정신에 누가 될 것이다.

필자가 종로에서 모임을 갖는“21세기신문화연구회”라는 학술단체를 3년여 나갔었는데, 지난 9월 14일 토요 강좌에 朴 宗鎬(1922년 우리나이 92세) 영감이 나와서“홍익인간사상”강의를 했는데, 弘益人間은 형이상학이고, 在世理化와 理化世界는 형이하학이다. 또한 초대 居發桓거발한 桓雄天皇한웅천황은 정치가가 아니고 부처였는데 아미타불이고,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여 인도로 전해졌다. 이러한 주장을 하던데 자- 그러면 불교에서 이상세계로 설정한“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무엇을 뜻하며, 우리의 문화 에서는 해가 뜨는 동녘이 희망의 상징인데 불교는 서방이 극락세계이다.

불교가 서방을 선호한 것은 인도는 고온다습한 곳으로 태양이 내려 쪼이는 낮에는 그 열기에 고통스러우니까 해가 질 무렵의 시원함을 상상한 것이다.

이러한데 학문의 學字학자도 모르는 영감이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여 인도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 주장이 맞다 면 인도에서는 동방을 선호해야 되는데 어째서 서방을 선호하는가?

제주의 안 창범 박사가 석가가 백두산에서 수도를 하고 한라산에서 초전 설법을 했다고 하는 학설을 그대로 인용과 수용을 하고 있다.

我田引水아전인수도 類萬不同유만부동이고 이것은 見狂否回견광부회이다.

弘益人間홍익인간이 형이상학이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홍익사회를 어떻게 이룰 수 있으며, 삼국유사 고조선본기에 弘益人間 在世理化란 기록이 나오고 있고, 理化世界는 문헌에 없는 출처불명의 단어이다.

오늘날 학자들이 理化世界란 단어를 즐겨 쓰고 있는데 이 기회에 밝혀두는 바이다. 학문은 六何原則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이치에 맞는 학설을 말 해야지 박 종호 영감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아전인수 격의 주장을 하려 든다면“온 세계가 모두 한국이다.”라는 주장은 못하겠는가?

이러한 假學者가학자의 강의를 듣겠다고 많은 인사들이 모였었는데 모두가 나처럼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학설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강단에 올리는 이 공훈 회장은 학문을 추구하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사실 필자가 21세기신문화연구회에 처음 나갈 때 3년 여 전까지 천부경 강의는 제일 많이 들었다면서 천부경과 홍익인간사상이 어떠한 관계인지를 모르고 그냥 천부경만을 장님 코끼리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한심한 것을 본인이 말해서 천부경이 홍익인간사상의 경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21세기신문화연구회라는 곳은 학술단체라기보다 학습단체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평균나이가 60을 넘어 70에 가깝고 이제 살아온 시기보다 살아갈 시기가 ⅓~⅕수준밖에 안 남은 사람들이 만물박사가 되려는 듯이 모든 학문을 다 섭렵하고 있는데 필자의 소견은 이제 남은여생에 국학만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거기에 나오다 안 나오는 사람 중에는 벌써 저 세상으로 간 사람도 많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弘益人間홍익인간은?”

桓國한국 7대 智爲利지위리(惑曰혹왈 檀仁단인) 桓因天帝한인천제께서 居發桓거발한 桓雄天皇한웅천황에게 率徒三千솔도삼천하여 태백으로 내려 보내면서 可以 弘益人間가이 홍익인간 하라고 유지를 내리신겁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는 싸우지 않는 신천지를 開天개천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삼국유사 고조선본기에 弘益人間 在世理化란 기록이 나옵니다.

이를 朴 宗鎬 영감이 濟世理化 理化世界 弘益人間 이라고 왜곡을 하고, 홍익인간은 형이상학이고, 제세이화와 이화세계는 형이하학이다. 이렇게 엉터리 학설을 주장하고 다닙니다.

한인천제께서 한웅천황에게 다시는 싸우지 않는 세상을 건설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은 즉, 평화의 세상입니다.

평화의 세상은 우리 人間인간들이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홍익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 종호 영감은 홍익인간은 형이상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평화의 세상은 누가 이룩해야 됩니까? 형이상학이 평화를 이룩해 줍니까? 아니면 죽어서 저승에나 가서 평화를 이룩하자는 겁니까? 참으로 가당치 않은 학설을 외치고 다닙니다. 여기에 누구든지 반론을 제게 하기 바랍니다.

“人生인생과 人間인간”

인생과 인간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먼저 인생은 自我자아 즉,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고 전체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촌 인류를 통틀어 人間인간이라 한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바로 이 개념의 인간을 말하고 지구촌 인류가 어떻게 지혜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그래서 홍익인간사상은“나 이전에 너이고, 그 까지를 아우르는 우리를”말하는 것이다.

一無憾且怫異者 한 사람도 섭섭하고
일무감차불이자 답답하지 않게 하라. 이것이 홍익사상의 핵심이고, 궁극의 목표이다. 그리하여

一無憾且怫異者 衆議一歸 爲和白 이 홍익인간사상의
일무감차불이자 중의일귀 위화백 완성이다.

이에 반하여 불교에서는 철저하게 人間인간을 가르친 게 아니고 人生인생을 가르쳤다. 불교는 自我자아를 探究탐구하고 자아를 啓發계발하고 자아를 上昇상승시켜 自我完成자아완성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自我자아”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쓰는 단어이다.

불교의 궁극의 목표는 자아를 완성하여 涅槃열반에 들자는 것이다. 필자가 1권의 책에서도 지구촌 인류의 역사와 사상은 모두가 그 지방의 자연환경의 산물이다. 라고 규정 해 놓았다. 불교의 궁극의 목표가 열반에 있는 것은 다시 말하면 生,老,病,死생노병사 四苦사고의 娑婆世界사바세계를 육도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大自由대자유를 찾자는 것이 열반이다. 불교가 이렇게 사상이 정립된 것은 인도의 자연환경의 산물이다. 그래서 필자는 불교는 인생을 가르쳤고, 홍익인간사상은 인간을 가르쳤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는 人生인생✚排他배타,獨善독선,利己이기를 가르치고 있다. 신약에 예수의 젊은 시절 즉, 청소년기의 18년이나 긴 세월의 행적이 빠져 있는데 이 때 예수는 인도로의 구도의 길을 가서 인도의 힌두교 및 불교 사상을 배운 것이다. 예수는 그의 조국 이스라엘에 돌아와 유대교를 개 혁하여 유대민족의 選民思想선민사상을 타파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민족의 장벽에 부딪혔고, 예수는 좌절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초기에 문자주의파와 영지주의파가 있었는데, 이 두 파의 싸움에서 영지주의파가 져서 영지주의 파는 사라지게 되었는데 영지주의 파는 5세기까지 존속하였다.

※문자주의파; 바이블에 기록된 내용을 문자 그대로 절대가치로 신봉하는파

영지주이파; 예수의 정신과 영성을 추구하는파 즉, 예수의 개혁정신을 이 어 받아 진리를 추구하였다.

이렇게 두 파가 있었는데, 영지주의파의 선구자“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의 하나님은 따로 있다. 창조, 공의, 질투, 분노, 보복, 징벌의 신으로 제시되는 구약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계시된 사랑, 평화, 용서, 구원, 복음의 하나님은 일치할 수 없다. 마르시온은 <마르시온 신약성경>을 만들었는데 목록은 아래와 같다.

1.갈라디아서/ 2.고린도(전)서/ 3.고린도(후)서/ 4.로마서/ 5.데살로니아(전)서/ 6.데살로니아(후)서/ 7.예배소서/ 8.골로새서/ 9.빌레몬서/ 10. 빌립보서

이렇게 정립하였고, 구약 전체와 신약의 계시록 전체를 폐기처분 하였다. 영지주의파는 환생의 교리가 있었으나 문자주의파의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고 예수만이 부활을 했다는 주장에 의하여 기독교가“환생 즉 윤회의 교리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마르시온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 완전히 별개라고 주장하였고, 그는 「대조법」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신약과 구약의 문장들을 병치해서 그 문장들이 서로 얼마나 모순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야고보서」,「요한서」,「유다서」,「요한계시록」들은 예수의 역사성에 전혀 관심이 없고, 여기에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들은 원래 그런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저자가 없었다. 그러다 후세에 가상의 저자 이름을 얻게 되었다. 복음서들은 사실상 익명의 작품이다.

복음서는 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용이 바뀌었고 덧붙여졌다. 이처럼 수많은 편집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들이 모순되거나 일관성을 잃는 부분이 남아 있어서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혼자서 신약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신약은 예수의 뜻과는 무관하게 문자주의파들의 정략적인 계획으로 구약의 토대위에 신약을 정립을 하였다. 이 과정은 바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렇게 정립된 기독교를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함으로써 이 唯一神思想유일신사상이 서구로 전파돼 20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구의 정신과 문화로 二元論이원론의 서구문화의 바탕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서구의 사회에서 그래도 排他배타와 獨善의 정신은 緩和완화 되었지만 利己이기의 정신은 더욱 고조되어 서구의 교육방식이 바로 이 이기정신에 바탕을 둠으로써, 또한 우리의 동양도 서구문화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 이기심의 교육의 한계를 못 벗어나고 있으며, 이슬람권은 아직도 배타와 독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사회는 지금 어떠한가? 옛 우리의 속담에“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또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라고 했는데 이 정도는 애교이고, 지금은“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을 이렇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있는가?

※ 이상과 같이 인생의 가르침과 인간의 가르침의 차원이 다른 점을 논증하였는데, 朴 宗鎬 영감 과 안 창범 박사는 불교가 우리한테서 발생을 하였다고 불교와 홍익인간사상을 혼동을 하여 불교와 홍익인간사상이 모두 우리 것이라고 我田引水格아전인수격의 주장을 하고 있으니 필자는 이를 바로 잡고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1권의 책 p218“황사영 백서”에서 정약종의 사위 황사영은 기독교를 이 땅에 퍼트리기 위하여 역적행위와 같은 백서를 명나라에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을 당하였고, 장인 정약종도 기독교를 신앙하다 처형을 당하였으나 같은 형제 중에 넷째인 다산 정 약용은 서학을 탐독하기는 하였으나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드리지 않았다고 기술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김 일성 주체사상을 정립하였던 황 장엽 선생은 김 정일 치하에서 월남하여 남은여생을 남한에서 살다 가셨는데 그 황장엽 선생을 미국의 숄티 여사가 기독교로 선교를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였어도 끝내 황장엽 선생을 선교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황장엽 선생과 정약용 선생은 학문의 수준이 바이블의 수준 위이기 때문에 바이블을 가지고는 그분들의 정서를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학문은 학문으로써 말 해야지 학문을 나이로 하는 게 아니고 학벌로 하는 게 아니고 학위로 하는 게 아니다. 필자가 어데 가서 어느 학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학을 어데 나왔느냐고 먼저 묻는 데 학문은 학문으로 말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박 종호 영감과 안 창범 박사에게도 학문을 애국심으로 하지 말고 학문은 학문으로 하자는 것이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관련기사

키워드

#N
저작권자 © KMS 한국인터넷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