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창희 칼럼니스트>

[LPN로컬파워뉴스] 칼럼니스트, 한국불교는 頓悟頓修돈오돈수로서 道脈도맥이 끝났다.

한국의 불교에 우리가 해방 후 최고의 선지식 이라고 추앙했던 성철 승려가 소위 頓悟頓修돈오돈수를 외쳤다.

한국불교 천 6백여 년 사에 돈오돈수를 외친 승려는 성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즉 이로서 한국불교는 그 도맥이 끝난 것이다.

한국불교사에 過猶不及과유불급의 역사를 두 번 기록하고 있는데 첫 번은 신라말기에 불교의 과유불급으로서 불교의 부패가 신라의 막을 내리게 했고 고려말기에 불교의 부패가 고려를 막을 내리게 했다.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AD 372)에 順道(순도)와 阿道(아도)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의 불교도입이 순수한 백성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도입된 게 아니고 조정에서 정략적으로 도입 된 것이다.

즉 이때까지도 우리의 蘇塗宗敎(소도종교)와 弘益和白(홍익화백)의 여음이 남아있었고, 또한 多勿(다물)세력이 있었다. 多勿은 고조선의 제도(홍익화백)로 되돌리자는 세력이었다. 이것이 고구려의 신생국가에서 보면 구세력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조정에서 구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권 세습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 불교가 이용 된 것이다.

산중의 소도경당을 불교로 하여금 접수하게 한 기록을 한단고이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佛像始入也 建寺 稱大雄 此僧徒之 襲古仍稱
불상시입야 건사 칭대웅 비승도지 습고잉칭

本 非僧家言也
본 비승가언야

불교가 도입되면서 경당을 세워 본당을 大雄殿(대웅전)이라고 이름 한 것은 승도들이 옛 소도경당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으로 大雄殿(대웅전)이란 이름은 본래 불교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불교가 소도를 점거하였다는 것을 알게 한다.

※ 大雄殿; 소도에서 역대 한웅을 모시던 이름으로 우리 조상님들은 한웅의 太伯山頂神壇(태백산정신단)이후 國仙(국선)-홍익인간에 뜻을 두고 산중에 소도를 세워 仙人(선인)으로 參佺(참전)하였다. 지금 곳곳에 태권도, 택견, 國樂(국악), 丹學(단학) 등을 비롯하여 여러 전통이 부활되고 있는데 이들이 集積(집적)한 곳도 바로 소도로 자녀들을 위한 교육시설도 갖추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논제는 다시 頓悟頓修(돈오돈수)로 돌아가서 한번 깨치고 나니 더 닦을게 없다고 했는데 성철승려의 이 외침은 그야말로 語不成說(어불성설)이다.

자- 성철승려의 일생의 삶의 大義名分(대의명분)이 무엇이었는가? 그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처, 자를 버리고 그 고달픈 수행의 길을 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사바세계 즉 속세는 지금 어떠한가? 인간은 점점 사악해지고 사회는 점점 혼탁해져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頓悟頓修(돈오돈수)로서 더 닦을게 없다고? 참으로 자신의 이생의 삶의 대의명분을 망각하고 세상의 현실정은 도외시 한 채 山是山 水是水(산시산 수시수)나 한가로이 읍조리다, 고작 頓悟頓修(돈오돈수)를 외치고 갔는데, 성철 이후로 더 닦을 승려도 없을뿐더러 더 닦아보아야 성철의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즉 한국불교의 道脈(도맥)은 이제 끝난 것을 말하고 간 것이다.

過猶不及(과유불급)의 한국불교사가 이제 세 번째 맞이하고 있는데 현 세 번째는 이들이 나라를 망해 먹지는 못하고 스스로 망하고 말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과유불급을 해서 망하지 않은 역사는 없다. 종교도 여기에 예외일 수 없다. 한국불교의 현실을 관찰 해 보면 지나침이 도가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억대 도박을 하는 승려들은 그 돈이 자신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인가? 강남의 어느 목 좋은 사찰에서는 초파일 행사가 끝나면 보시함의 돈을 꺼내는데 포대자루에 발로 밟아 넣을 정도이다. 이 정도면 지나침의 극치이고, 이렇게 지나쳐서도 온전할 수 있는가?

人間萬事(인간만사)는 조금 부족할 때가 가장 안정적이다. 지나쳐서 탈이 안 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 해 주고 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한국불교의 현 過猶不及(과유불급)은 스스로의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이것이 시대의 조류이다.

필자와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은 미친 소리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증명 해 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제 아무리 영웅호걸이라도 시대의 조류는 거스르지 못하였다.

불교에서는 因果論(인과론)을 가르치는데 過因;(과인-지나침의 까닭 즉, 씨앗)을 심고 있으므로 過果;(과과-지나침의 열매)를 맺으니 過;지나침을 거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라와 고려는 불교의 지나침으로 나라가 망했지만 이번의 삼세번에는 불교 자체가 망할 것이다. 이것을 불교 신자 중에 깨인 자가 있어서 알아차린다 해도 한사람 또는 몇 사람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지나침의 속도는 탈력을 받았고 그 속도를 제어하기에는 때가 늦었다.

이것을 제어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이 한국의 잘 발전한 경제력이다. 즉, 풍부해진 돈이 불교를 갈아먹고 있다. 말로는 무소유를 외치면서 실질은 유소유의 탐욕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율배반적인 것은 진리가 아니다.

일찍이 만해 한용운 선사 같은 선지자가 나와서 한국불교유신론을 주창하기도 했으나 그 때는 불교를 되살리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제는 불교유신을 말하는 자도 없고 이미 갈 데 까지 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바로 그 해답을 제시 하려고 필자가 여기까지 강의를 끌어 온 것이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키워드

#N
저작권자 © KMS 한국인터넷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