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창희 칼럼니스트>

〔LPN로컬파워뉴스] 칼럼니스트, 우리는 이러한 정신문화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교학만을 탐구해서는 성불을 할 수 없고 참선을 통하여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學僧(학승) 보다는 禪僧(선승)을 더 先知者(선지자)로 추앙을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홍익인간사상 에서도 학문만을 해가지고는 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본다.

三一神誥삼일신고에서 안내하기를...

止感지감, 調息조식, 禁觸금촉하고 階萬善계만선하고 門萬德문만덕하여 有유 性通功完者유성통공완자라야 朝조하야 永得快樂영득쾌락이리라. 라고 수행의 길을 안내하듯이 天符經천부경의 81자 글자에만 매달려가지고는 천부경의 이치를 會通회통하여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에게는 일찍이 수행의 길이 있었는데 그것은 仙道선도이다. 홍익사상의 학문과 선도가 따로 발전해온 게 아니고 홍익사상과 선도는 同體동체이다. 여기에 또한 우리에게는 信仰신앙의 세계가 있는데 그것은 巫俗信仰무속신앙이 있다.

이 무속신앙과 홍익사상은 어떠한 관계인가를 설명하기에는 저의 학문이 아직 미흡함을 밝히면서...

무속신앙의 시원을 탐구하기 위하여 박용숙 저《샤먼 제국》이란 책을 보니까 샤먼의 신앙은 한마디로 4,5세기경에 어떤 종교 세력이 한반도로 밀려왔다고 말해야 맞다. 고 쓰고...

이제 시선을 환인의 서자 桓雄환웅이 天符印천부인과 승려 3,000명을 이끌고 내려갔다는 神市신시로 옮겨가봅시다. 그곳은 오늘날 시리아의 중심부 알레포에서 서남방으로 약5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고대유적‘이브라ib-La'입니다. 거대한 접시를 엎어놓은 모양의 이 유적은 1964년, 이탈리아의 파올로 마티에Paolo Matthiae가 발굴하였고 그곳이 기원전 3,000년 경의고대도시 델마르두크 신전 터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중심부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그곳에 수많은 수도승이 거주했습니다. 신시라는 기록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지요. 게다가 마르두크의 뜻이 지팡이(낫)이므로 이것 역시 환웅의 天符印천부인과 대응됩니다.

성서는 이 낫을 가리켜 만국을 지배하는 쇠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유적에서 발굴된 점토판은 마르두크신이 수메르 문명 시대의 영웅 사르곤Sargon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환웅이 곧 사르곤입니다.

그렇다면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난 王儉왕검의 역사도 그곳 어디에서 펼쳐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제가 만든 신화보다 더 상상의 세계이다.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지역과도 동떨어진 주장이고...)

이렇게 전개 해 나아가고 있는데 먼저 줄친 곳 두 곳을 살펴보면 “한단고기”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일제가 신화로 날조 해 놓은 주장을 그대로 수용 한 것이고“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과 승려 3,000명을 이끌고”라고 기술 했는데 이 대목은 전혀 엉뚱한 주장이며, 승려라는 단어는 인도에서 불교 교단이 성립되면서 승려의 단어가 나온 말인데 우리의 조상 한웅천황이 3,000의 동지를 이끌고 태백으로 내려왔던 시기와 인도에서 불교 교단이 성립되던 시기와는 맞지 않고, 한웅이 3,000의 동지들과 태백으로 내려온 시기가 석가의 탄생보다 수 천 년 먼저이고,“환웅이 곧 사르곤입니다.”이 대목은 필자로서는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는 주장이기에 필자가 공부한 견해로는 박용숙의《샤먼 제국》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한단고기를 보았다고 했는데 박 용숙 노학자가 본 한단고기는 다른 한단고기인가?

(삼국유사) 昔有桓國 庶子○○ ○○○ 桓雄○

(한단고기) 昔有桓國 庶子之部 有大人 桓雄子

삼국유사와 한단고기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박용숙은“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과 승려 3,000명을 이끌고”라고 기술하고 있다.

환인의 서자 환웅은 이것이 바로 일제가 날조해 놓은 역사이다.

國을 因으로 바꾸어 桓國나라 이름을 桓因마치 사람 이름인양 왜곡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또한“환웅이 천부인과 승려 3,000명을 이끌고”라고 했는데 승려 3.000명이란 전혀 쌩뚱맞은 주장이다. 한웅이 승려를 3,000명을 이끌고 왔다는 주장은 박용숙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문헌은 참고할 가치가 없다.

박용숙의 이 책은 소설책이라면 몰라도 역사를 말하는 학문으로서는 수준 미달이다.

그래서 우리의 토속신앙인 巫俗信仰무속신앙은 지금의 행태만을 논하겠다.

TV에서 보니까 몽골에도 무당이 있는데 굿을 할 때의 입는 복장이나 가지고 춤을 추는 도구들이 우리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당은 영매자로서 각자 자신에게 접신이 되어있는 신들이 따로 있다. 무당이 되기 위하 여는 큰무당 즉 어머니무당으로부터 降神강신의 굿을 거쳐야 드디어 자신의 신당을 차리고 독립을 하는데 그 강신굿에서 통과해야하는 과정이 시퍼런 작두날위에서 맨발로 춤을 춘다.

이것은 차력의 행위가 아니고 신의 신비함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되는 무당을 降神巫강신무라하고 또한 世襲巫세습무가 있다. 세습무는 신 내림굿을 거치지 않고 선대로부터 가업으로 이어오는 무당이다. 그래서 이 세습무는 접신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필자는 모른다. 이 세습무에게 확인해 본 바가 없음으로...

오늘날 이 무속신앙의 세계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무당 자신들도 정체성을 잃고 필자가 불교에서 정진할 때에 지도자 수련대회에 가보면 무당이 나와서 자기가 불교신자라고 참석하는 것을 보았고 송호수 박사 밑에서 공부할 적에 거기에 나와 단군사상을 같이 공부한 무당도 있다.

우리의 토속신앙인 무속이 왜 이렇게 위축 됐는가?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우리의 토속 美風良俗미풍양속을 모조리 迷信미신이라고 배척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들고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우리의 美風良俗미풍양속을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구습타파를 외치고, 구습타파만이 진리인양 착각을 하고 밀어냈다. 성황당도 없애고 성황당에 있는 수령이 깊은 나무도 동네 어르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어 버렸다.

이것은 빨리빨리의 발상으로 조급하게 저질은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버린 행태이다. 溫故知新온고지신을 모르고 우리는 이렇게 조상들의 정신과 단절만을 해 온 것이다.

※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조상들의 관 습과 미풍양속들을 쓸어 냈으며, 한글전용화 정책으로 한문을 마치 남의 나라 글로 치부하고 버림으로서 한자문맹을 초래했다. 우리는 한자를 모르면 조상들의 역사를 알 수 없고 역사를 잃으면 ⌜한⌟민족이라는 민 족의 개념이 성립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공화당 시대에는 무당들의 무속행위를 법으로 단속하기까지 했다. 무당들의 무속행태를 조명해보면...

각자 降神강신되어있는 신이 따로 있고 일반인이 그 무당에게 의뢰하여 굿을 하면 무당에게 내려있는 신을 매개로 의뢰자의 조상의 영혼(神)을 불러내어 조상과 자손사이의 소통을 하는 것이 굿이다.

이것을 解怨해원풀이라 한다. 즉 조상의 살아계셨을 때 맺힌 원한을 풀어드린다. 이렇게 하면 저승에 계신 조상의 영혼이 안락함으로 그 자손들이 하는 일이 잘 된다. 즉 복을 받는다.

※ 박 민찬 風水地理풍수지리 학자의 말을 빌리면 조상을 좋은 묘 자리에 모시면 즉 명당자리에 모시면 그 조상의 유골이 안락함으로 자손들과 유전자가 통하니까 자손들이 건강하고 하는 일도 잘된다. 즉 복을 받는다.

무당에게 의뢰하여 조상의 해원풀이를 해 드리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자면 공화당 시대에는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을 했는데, 그러므로 전방은 항상 긴장이 고조되었었고 전방의 한 부대의 막사에서 어느 병사가 밤에 막사의 입구 쪽에서 잠을 자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아무개야 입구에서 자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거라!”고 지시를 했는데 병사는 무심코 그냥 다시 잠에 들었는데 또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똑같은 지시를 함으로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잤고 그 결과 입구에서 자던 다른 병사가 북한군으로부터 목이 잘려갔다는 일화가 있고, 요즘의 로또복권 일등 당첨자의 48프로가 조상 꿈을 꾸고 복권에 당첨이 됐다는 통계가 있다.

이만하면 조상을 잘 받들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가?

우리들의 설화 중에 조상의 제사를 정성들여 모셔서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홍익인간사상의 삼화사상이 敬天경천, 崇祖숭조, 愛人애인 인 것만을 보아도 崇父숭부라고 하지 않고 崇祖숭조라고 한 것도 돌아가신 조상을 잘 모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바로 信仰신앙이다.

다시 말하면 조상과 자손은 혈통이 통함으로 조상은 자손에게 더 못 주어서 한이지 조상은 자손에게 질투, 분노, 시험, 증오, 징벌, 복수 등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독자께서 자신의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생각해 보시면 조상이 현재의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실까를 가늠 할 수 있지 않는가?

우매한 얼간이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 조상들을 배반하고 남의 조상에게 매달려 애걸을 하는 것을 볼 적에 이 필자는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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