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창희 칼럼니스트>

〔LPN러컬파워뉴스] 칼럼니스트, 거짓말 하는 종교는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속고 살 것인가?〕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첫 가르침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즉 홍익인간사상은 거짓말을 하면 홍익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

忌三妄(기삼망); 僞-거짓, 怠-게으름, 違-어김을 하지 말고

盡三道(진삼도); 眞-참, 勤-부지럼, 協-어울림을 다하여

이렇게 僞-거짓말을 하지 말고 眞-참(正直정직)되게 怠-게으르지 말고

勤-부지런하게 違-어김(약속은 꼭 지켜야함)을 하지 말고 協-어울려라!!!

協- 서로 돕는 相扶相助(상부상조)를 하기 위하여 하지 말 것과 해야 될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다.

홍익인간사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우리가 그 것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 것의 노예가 되어 있는 종교들은 人間(인간)을 惑世誣民(혹세무민)하여 愚昧(우매)의 틀 속에 가두고 搾取(착취)하고 있는데, 현 人類(인류)는 얼간이가 되어 속고 갖다 바치고 존경을 한다.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이것은 가치가 전도된 顚倒夢想(전도몽상)이다.

◉ 먼저 기독교를 살펴보자!

기독교는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인데 예수의 정신과는 전혀 상반된 종교이다. 예수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유대교 구약의 토대위에 신약을 정립 해 놓은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이다.

구약의 시작은 모세5경으로부터 인데 모세5경은 함무라비 법전에서 나왔고 함무라비 법전은 슈멜 법전에서 나왔다는 게 학계에서 공인된 학설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모세가 애굽으로부터 유대민족을 이끌고 탈출 하는데서 시작이다. 오늘날의 바이블을 연구한 학자들이 모세는 실존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유일신사상의 시조는“아브라함”으로부터 인데 아브라함에게는 첫 부인“사라”가 있었다. 사라는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아브라함에게 권유하여 이집트 여인(하인)“하갈”을 첩으로 맞이하도록 한다.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에 하갈(첩)이“이스마일”을 낳았는데 즉 첩의 아들이지만 장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이도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아이를 낳지 못하던 첫 부인 사라가 기적적으로“이삭”을 낳게 된다.

이 유일신사상의 불행과 다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구약에서는 신(여호와 야훼)에게 제물로 바쳐질 뻔 했던 주인공이 이삭이라 주장하고 이슬람의 코란에서는 제물로 바쳐질 뻔 했던 인물이 이스마일이라고 주장한다.

즉 유대교의 조상 이삭과 이슬람의 조상 이스마일을 놓고 서로가 자기네가 정통이라고 싸우는 것이 처음 시작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실상이다.

자- 이 대목을 분석해보자. 아브라함이 86세에 하갈과의 사이에 이스마일을 낳고 100세에 사라와의 사이에 이삭을 낳았다는 것이다.

첫째; 아브라함이 86세와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생리학적으로 그 대로 받아드려도 되는가 하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그 나이에 그 부인 들 사라와 하갈도 그와 버금가게 나이를 먹었을 것이고,

둘째; 어째서 사라만을 아브라함의 부인으로 등장 시키지 않고 하갈이라는 이집트 여인(하인)을 첩으로 등장시키느냐 하는 점을 분석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이스라엘 유대민족은 애굽(이집트)의 노예에서부터 역사가 시작이 되 니까 유대민족의 心情(심정)에서는 자신들도 한번 애굽을 다스려 보 았으면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넷째; 차라리 하갈이 이스마일을 낳았으니까 사라는 이삭을 낳지 않은 것으 로 정립을 했더라면 오늘날 유대교와 이슬람의 정통 다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인데, 그랬더라면 이스라엘 유대민족과 이집트 애굽 민족 사 이가 좋지 않았을까? 서로 화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니까.

다섯째; 그러나 사라가 이삭을 낳지 못한 것으로 정립을 해 놓으면 이스라 엘 유대민족은 그 정통성이 반감될 것이므로 하갈이라는 하인을 첩 으로 등장시켜 이스라엘의 유대민족이 이집트 애굽 민족을 다스려 보고, 또한 사라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100세의 늦은 나이에 무리하 게 이삭을 낳게 함으로 애굽 민족과 유대민족의 영원한 반목과 투 쟁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이것이 유대민족의 選民思想(선민사상)의 시작이다. 이 選民思想은 眞理(진리)가 아니며, 도대체 어떤 신이 우주만물을 제가 창조 해 놓고 그 중에서 어느 특정 민족을 선택하여 그 민족만을 향하여 내 백성! 내 백성!을 외치느냐 말이다. 구구절절하게...

이 유대민족의 선민사상은 지구상에서 타 민족과 절대로 더불어 살아갈 수 없고 오로지 유대민족만 살아남고 여타 다른 민족을 지구상에서 쓸어 내 버리고자 하는 사상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선민사상이 태어 낳는가? 유대 민족은 애굽의 노예로서 압박과 설움에서 분노와 증오심으로 복수를 해 보자고 유대민족을 하나로 담합시키기 위하여 선동하는 것이 바로 選民思想(선민사상)이다.

그래서 구약의 여호와 야훼는 질투, 분노, 증오, 복수, 징벌 등으로 일관되게 복수심이 이글거리고 있지 않는가?

자- 예수라는 위대한 인간이 세상에 나와서 보니까 이스라엘의 유대교의 선민사상 이것을 이대로 놔 둬가지고는 이스라엘 민족뿐만이 아니고 세계의 전 인류가 평화스럽게 살 수 없다는 것을 12,3세에 깨닫고 그 이스라엘 내에서는 그 것을 깨트릴 가르침을 찾지 못하니까 어린 나이에 상인들을 따라 인도에로 구도의 길을 갔었는데 신약에서는 이 예수의 구도의 과정을 빼버리고 16여 년의 공백 기간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가 인도로 구도의 길을 떠날 때의 나이를 예의 주시 해 보자 지금의 우리 어린이들은 그 나이에는 응석부리로 사춘기 시절을 격을 나이이다.

철부지로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부모로부터 무엇을 해 달라고 뗑강이나 부릴 나이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나이에 벌써 人類愛(인류애)로서 어떻게 하면 인류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 한 것이다.

그래서 인류평화를 이룰 수 있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인도로 구도의 길을 간 것이다.

예수는 다시 그의 조국인 이스라엘로 돌아와 구약에 의한 이스라엘의 選民思想(선민사상) 이것을 타파하고 개혁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기독교를 사랑하고 기독교를 추종하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이스라엘에서의 선교 기간 동안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에 저항하는 것을 구구절절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던지 아니면 <성혈과 성배>에서 밝힌 것처럼 프랑스로 망명을 했던지 간에 무대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에 70여년 후에 태어난 사도 바울은 처음에 유대교의 착실한 신도이었다.

예수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기록들은 바울의 글들이다. 그는 엄격한 유대인 가문 출신이나 그의 아버지가 비싼 대가를 치른 덕분에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대인 본명인 사울을 바울 Paulus로 고칠 수 있었다. 그는 상류층에 속했으며 엄격한 바리새인의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여러 방면에 걸쳐서 심오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리스어를 익히고 그리스의 시와 철학에 관한 방대한 서적을 읽었다. 그는 18세에서 20세 사이(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예루살렘에 가서 가마리엘 Gamaliel 1세의 제자가 되어 신학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그때 유대교 광신자로 소심하고 율법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했으며, 바리새인으로서의 그의 직업에 장애가 되는 초기 기독교도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예루살렘의 경계 밖에서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처형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을 내려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그는 그 일을 수행하는데 쏟아 붓는 유별난 정열을 제사장을 감동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다마스커스 근처에 머무는 동안 그는 예수와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오는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위치가 주는 가능성을 깨닫고 그것에 압도되었다.

그는 미래의 거대한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에 도취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를 언급할 때에 그것은 대체로 바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계율과 교훈의 교리이므로 <바울주의Paulinism>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교회의 역사가 빌헬름 네스틀레 Wilhelm Nwstle는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설명한다.

“기독교는 바울이 만든 종교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대치해 놓았다.”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에서 옮김>

기독교 초기에 영지주의파와 문자주의파가 있었는데,

◆ 영지주의 파; 예수의 영성과 정신을 그대로 따르는 계파

◆ 문자주의 파; 신약에 기록된 문자들을 절대가치로 신봉하는 파

이 두 파의 싸움에서 영지우의파가 져서 영지주의 파는 사라지게 되었는데 영지주의 파의 선구자 마르시온은 구약 전체를 페기처분하고 신약의 계시록 모두를 페기 했고, 마르시온 신약을 따로 정립하였으며, 5세기경 까지 이들 교파가 존속 되었었다. 문자주의 파는 영지주의 파가 사라진 뒤 마르시온을 인류 최초로 온 사탄 이었다고 규정 해 놓았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문자주의 파 들의 정략에 의해서 정립된 것이다.

예수보다 600여년 후에 태어난 무함마드는 그 당시 기독교가 번창하여 그 세력을 확장하여서 그에 대응하는 아랍세력을 구축하기 위하여 이슬람을 탄생 시키는데 그도 또한 앞의 설명처럼 구약을 토대로 코란을 정립 하면서 구약 자체를 비판하고 신약의 모순점을 비판하는,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리지도 않았으며,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허위라는 것을 코란에 명기 해 놓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가 부활했다는 부활절을 범 세계 적으로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거짓말로 일관 한다. 천국과 지옥, 예수 재림 등 이것들은 모두가 惑世誣民(혹세무민)의 거짓말이다.

살펴본 봐와 같이 예수는 구약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구약에 여호와 야훼가 질투. 분노, 증오, 복수, 징벌의 신을 신약에서는 사랑, 용서, 구원, 복음으로 바꿔 놓은 것만을 보아도 단박에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마르시온은“모세의 하나님과 예수의 하나님은 절대로 일치할 수 없다. 예수의 하나님은 따로 있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은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구약의 야훼와 신약의 야훼를 동일한 신으로 믿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모순된 논리는 없다. 뒤에가서 불교를 비판할 것인데 불교도 이와 大同小異(대동소이)하다.

예수는 바이블 구약을 타파하기 위하여 등장한 聖人(성인)인데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은 구약을 계승하고 예수를 타파한 것이다. 이러면서도 예수를 찬양한다고 외쳐 댄다. 그러고는“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이란다.”기독교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 후로 땅에는 평화가 이룩된 역사가 있는가?

지구촌 인류를 피로 물들였고 지금 현재도 이스라엘은 이란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려야겠다고 하며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려야겠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이교도의 풍자가 켈수스는 바이블의 천지 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을 이렇게 꼬집었다.

하나님이 특별히 인간을 위해 만든 동산에서 인간을 추방한다. 그것은 참 어리석은 노릇이지만, 그 세계가 창조된 방식은 더욱 어리석다.

그들은 창조의 날들을 할당한다. 하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땅이 정해지지도 않았으며, 하늘에는 태양도 달도 별도 없는데, 어떻게 날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더없이 위대한 하느님이 벽돌공처럼 오늘은 이런 일을 하고, 내일은 저런 일을 하겠다, 셋째 날에는 또 이런 일, 넷째 날에는 저런 일, 다섯째 여섯째 날에는 또 어떤 일을 한다는 둥, 자기 일을 그렇게 나누어 처리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처구니없지 아니한가! 그런 하나님이라면 보통의 일꾼처럼 지쳐서 여섯째 날 후 쉬는 날이 필요하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을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하느님, 두 손으로 일하는 하느님, 막노동 십장처럼 지시를 내리는 하느님의 행동은 도무지 하느님답지가 않다고 꼬집을 거리도 못된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없는데 첫째 날이 있고, 해도 달도 없는데 낮과 밤을 명명하고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을 운운한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말을 수긍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이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에서 농부처럼 여러 나무를 심었다고? 도대체 어떤 인간이 그런 우매한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승영조 옮김〕《예수는 신화다》에서 보면

“바이블 신약은 신화를 합성하여 구성하고 역사적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 ⌜야고보서⌟, ⌜요한서⌟, ⌜유다서⌟,

⌜요한계시록⌟들은 예수의 역사성에 전혀 관심이 없고, 여기에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들은 원래 그런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저자가 없었다. 각 복음서는 각 그리스도교 분파의“가르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후세에 가상의 저자 이름을 얻게 되었다. 복음서들은 사실상 익명의 작품이다.

복음서는 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용이 바뀌었고 덧붙여졌다.

이처럼 수많은 편집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들이 모순되거나 일관성을 잃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성자가 아닌 사람이 혼자서 신약을 읽는 것을 금지 했다.

이 책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짓말!⌟이라고 말 하고 있다.

《의심의 역사》p413~414

폼포나치는 만약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세 가지 종교만 있다고 본다면 세 종교 모두 거짓이고 온 세상이 속고 있는 것이거나 최소한 두 종교는 틀렸으며 인류의 대부분이 속고 있는듯하다고 쓰고 있다.

이어서 p419~420에 이렇게 나와 있다.

칼뱅은 루터의 논리를 한 걸음 더 밀고 나갔다.

루터는 우리가 너무나 큰 죄인이기에 행위를 통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믿음과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터에게는 최소한 개인의 행위나 노력에 대한 여지가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칼뱅은 전지전능한 신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누가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있으며 따라서 태어나자마자 누가 구원 받을지 결정되어 있다. 고 주장했다. 따라서 믿음에 대한 노력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한 노력으로 변했다. 이렇듯 극단적이고 불안한 상황에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는 서로 비난하기에 바빴다. .

여기에 필자가 1권에서“메아리 없는 외침”이라고 쓴 글을 옮겨본다.

현 바티칸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슬람성지, 유대교성지, 통곡의 벽 등을 찾아가 참배를 드리고 이슬람과 유대교를 향하여“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가 화해하자.”고 외친다.

일반 세계의 사람들 중에는 더러 베네딕토의 행보를 보고 기독교에서는 “저렇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데 이슬람과 유대교에서는 응답이 없구나.”하고 아쉬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해를 하려면 화해를 할 이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말하자면 자동차가 세 대가 있는데 한 대는 경유(기독교)로 가는 차 한 대는 휘발유(유대교)로 가는 차 한 대는 가스(이슬람)로 가는 차 이렇게 세대가 있는데 경유로 가는 차가 나서서 우리 그럴게 아니라

① 경유, 휘발유, 가스를 혼합해서 같이 쓰자. 아니면

② 너희들도 경유로 써라. 또는

③ 나도 같이 휘발유나 가스로 쓰겠다.

베네딕토의 제안이 이렇게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화해를 할 수 있는 제4의 대안이 있는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정략적인 공염불만 하고 다니는 베네딕토는 위선자다.

밀가루 반죽 세 덩어리를 한 그릇에 담고 주무르면 한 덩어리가 된다. 그러나 고슴도치 세 마리를 한 바구니에 담고 휘둘러보아야 한 마리가 안 된다. 서로 상처만 날 뿐이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이 한 조상 세 가족 종교는 예수를 놓고 유대교에서는‘사기꾼’이라고 규정을 하고 이슬람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예수가 아닌 대체인물이라고 경전에 나와 있다.

기독교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 후 3일 만에 부활을 했다고 해마다 부활절을 범세계적으로 행사하고 있는데 이슬람에서 보면 죽지도 않았는데 부활은 무슨 부활? 할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이 이 한 조상 세 가족 종교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논리를 가지고 태어난 생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차라리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상호 편 할 것이다. 만나면 싸우니까...

이 집단들은 세계평화를 외칠 자격이 없다. 참으로 뻔뻔스럽게...

자신들이 퇴장을 해 줘야 세계평화가 이루어진다.

※ 기독교 영지주의 파 에서는 윤회설을 수용하였다. 만약에 문자주의 파가 사라지고 영지주의 파의 기독교가 오늘에 이어졌다면 기독교 사상이 인도의 사상과 비슷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주의 파는 구약의 토대위에 예수의 껍데기만을 앉혀놓고 예수의 정신은 모두 버렸다.

영지주의 파가 성공을 했더라면 아마 유대교를 퇴출시키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이슬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되었으면 지구촌 인류는 보다 더 평화스러웠을 것이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피로 물들이는 이 현상은 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오늘날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나의 이 지론에 귀를 기우려야 되고 또한 論駁(논박)을 해 주기를 바란다.

기독교의 신약에서 예수의 인도에서의 구도의 생활과 예수를 낳게 해준 아버지를 빼 버림으로서 신약은 출발부터 거짓으로 시작이다. 구약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하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믿으라고 강조한다. 1+1=2다 2+2=4다 이러면 굳이 믿으라고 할 필요가 없다. 안 믿어도 정답이니까 세상에 정답을 보고 믿으라고 피곤하게 강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1+1=3이다. 이렇게 되면 어째서 3이 되는지 설명을 해야 되고 또한 그것을 믿으라고 강조해야 된다. 사기꾼은 언제나 자신의 말이 참말이라고 강조한다. 사기꾼이 내말은 거짓말이다. 라고 하는 놈 있는가?

◉ 다음은 불교를 살펴보자.

한국불교는 음 4월 8일을 부처님 탄신일로 정하고 올해도 며칠 후면 그 가짜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리에는 온통 연등으로 장식을 해 놓았 다. 세계에서 4월 8일을 부처님 탄신일로 하는 나라는 우리 한국밖에 없으며, 원래 음력 4월 8일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의 탄신일 이었으며 古來(고래)로 해모수의 탄신일에 연등행사를 해 오던 것을 불교가 그 날에 해모수를 빼고 석가를 설정한 것이다. 이 또한 기독교가 우리의 하나님을 훔쳐간 것과 같다.

우리 고조선의 시조 檀君王儉(단군왕검)은

辛卯 五月 二日 寅時 生于檀樹下
신묘 오월 이일 인시 생우단수하에서 탄생하셨다.

신묘(BC 2370)년 5월 2일 인시(03~05시) 檀樹下(단수하)-蘇塗(소도)에서 탄생하셨다.

석가와 예수는 그 탄생 년 월 일이 불분명한데 우리의 단군왕검은 이렇게 명확하다.

이러한데 오늘날의 이들 종교에 노예가 된 수많은 사람들이 제 조상은 알아보지 못하고 이국의 실패한 자들의 엉터리 탄신일을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이자들이 제 조상 제사는 이렇게 성대하게 치르는 놈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사대주의의 근성이다. 조상이 없었으면 나(我)라는 존재가 현재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背恩忘德(배은망덕)도 類萬不同(유만부동)이지...

BC 13세기경 인도의 원주민은 농경민이었는데 수렵민족인 ‘아리안’족(게르만족의 조상)이 침략하여 이들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지배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가 바로 카스트 제도이다.

카스트 제도는

1급; 브라만 성자(절대자) 계급

2급; 크샤트리아 왕과 무사(군인) 계급

3급; 바이샤 평민 계급

4급; 수드라 노예 계급

이렇게 정해 놓았는데 브라만은 물론 침략자들의 몫이었을 것이고, 이 사성계급이 태어나는 과정이 브라만 위에“프라브라만”초 절대자가 있는데 이것은 창조주를 말 하는 것이다. 1급 브라만은 프라브라만의 이마에서 나왔고, 2급 크샤트리아는 프라브라만의 옆구리에서 나왔고, 3급 바이샤는 프라브라만의 정강이(무릎)에서 나왔고, 4급 수드라는 프라브라만의 발바닥에서 나왔다.

석가의 탄생이 2천 5,600여 년 전 이라고 하니까 석가 탄생의 수 백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카스트 제도는 이미 인도사회에 관습화가 되어서 인도의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시점에 석가가 태어난다.

석가는 카피라국의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나 장차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 이지만 그는 2급 크샤트리아의 계급으로서 석가위에 1급 브라만이 있다.

브라만은 절대자의 계급이라 2급인 석가가 다스릴 수 없다. 즉 석가는 태어나서 보니까 인간들에게 차등이 있어서 불평등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평등한 것인데 이렇게 불평등하게 되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 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경전에는 이런 말은 전혀 없다. 오로지 生, 老, 病, 死 四苦(사고)만을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人類愛(인류애)적인 발상으로 고민을 한 위대한 聖人(성인)의 정신을 이렇게 축소해 놓고 있다. 그러나 뒤의 필자의 典據(전거)를 따라오시면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자세히 분석 해 보면 석가도 제자들도 공통으로 거짓말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석가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7보씩 걸었으며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르치며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一切界苦我當安之(일체계고아당안지)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불교사전에서 찾아보면

天上天下唯我獨尊;‘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 는 뜻으로,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 을 걸은 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읊 었다는 글귀, 이것은 후대의 불교인들이 창작해 낸 설화 로, 이 우주에서 인간보다 더 존엄한 것은 없다는 뜻.

一切界苦我當安之; 모두가 고통스러우니까 내가 안락한 곳으로 안내 하리 라.

이렇게 기술 해 놓았는데 불교의 核心(핵심)은 바로 이것이며, 이것을 분석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은 석가 자신이 하늘 위 하늘 아래 홀로 존귀하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잘못 된 해석이고 가장 보편타당한 해석은 인간존엄의 선언이다.

왜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해야만 했을까? 즉 이것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반기를 들고 카스트제도는 틀렸다. 고 선언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차등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평등하다, 다시 말 하면 하위 평등이 아니고 상위평등을 시킨 것이다. 이러다 보니까 너무 나아가서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설정을 한다.

자- 이 대목을 깊이 思惟(사유)를 해 보아야 된다. 이렇게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설정을 하는 것은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기 위함인데 그 카스트제도를 탄생시킨 근원인“프라브라만(창조주)”이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설정을 한다.

이러다 보니까 불교에는 神(신)이 없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관된 설정이 되겠으나, 석가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 마야부인의 옆구리 탄생 설은 바로 카스트제도의 반영이다. 이러니까 앞의 주장과 뒤의 카스트제도에 승복하는 것은 전혀 상반된 논리이다. 불교가 왜 이렇게 짜여 졌는가를 지금부터 탐구하고 그 논리를 제시 하겠다.

석가 재세 시에는 석가이전부터 자이나교라던가 여러 사상들이 있었다. 그 사상을 가진 자들이 석가를 찾아와 많은 논쟁을 하지만 석가는 그들을 논리로서 굴복을 시킨다. 석가는 大覺(대각)을 이룬 사람이라 他心通(타심통)까지를 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논쟁을 하니까 그 누구도 석가를 당해내지 못한다. 당대의 어느 사상가도 석가에게 腹心(복심)은 하지 않더라도 석가를 논리로서 꺽지 못한다.

이리하여 석가 사후에 인도천하를 평정한 아쇼카왕이 등장하여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인도천하를 불교사상에 입각하여 다스린다. 이때가 불교의 전성시대였다. 나란다 불교 대학에는 학승들이 수천(3,000여)명씩 불교를 탐구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불교는 그 세력이 위축되고 퇴락해 갈 무렵 석가보다 700여 년 후에 용수보살이 태어난다. 용수보살이 다시 불교의 중흥을 이루기 위하여 대 타협안을 내 놓은 것이 오늘날의 불교는 중도사상이라고도 하고 중관철학이라고도 하는“불교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한다.”이다.

※ 불교가 인도에서 처음에는 반짝 전성시대를 구가하기도 했으나 용수 때에 와서는 왜 그렇게 그 세력이 위축 되었으며 지금은 힌두교의 세에 밀려 아예 퇴출이 되었는가? 그 것은 불교에는 神(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는 것은 眞理(진리)가 아니다. 불교가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상위에 놓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불교도 승려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하찮게 인간의 아래로 내려다보고, 불교 학자 중에는 산사의 산신당, 칠성당 등 우리의 고유 신앙의 표상들은 사찰에서 퇴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여튼 불교 신자들은 인간을 신의 상위로 신을 인간의 아래로 보는 시각이다.

이러하니까 본 고장인 인도에서 불교가 퇴출이 된 것이다. 이렇게 불교는 좋게 말하면 원만하고 나쁘게 말하면 두루뭉술이고, 흐리멍텅하고, 막걸리에 뜸물을 타서 막걸리도 아니고 물도 아닌 어정쩡한 사상이다.

불교는 오로지 自我探究(자아탐구)만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서 왔는가, 또한 내가 어떻게 살면 사후에 어디로 갈 것이다.

윤회의 실체를 唯識學(유식학)과 俱舍論(구사론)에서는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 유식학과 구사론으로 윤회의 실체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고, 인간이 창조된 神의 피조물로서 일회성이라는 논리는 틀렸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것만을 수차례 다시 강의를 해야 됨으로 여기에서 멈춘다.)

불교는 필자의 앞 강의에서도 말 했듯이 萬法歸一(만법귀일)이라는 단어는 쓸 자격이 없다. 왜? 불교는 정치를 버렸다. 그러나 인류는 정치를 떠나서는 사회의 질서를 잡아 나아갈 수 없고 우리가 먹고사는 살림살이를 꾸려 나아갈 수 없다.

석가는 카피라국의 정반왕의 아들로 장차 왕위를 계승하여 카피라국을 통치해야만 했으나 그는 그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구도 끝에 오로지 인생의 生, 老, 病, 死 四苦만을 말 하였다.

우리의“홍익인간사상”에서는 敬天(경천), 崇祖(숭조), 愛人(애인)사상이 있는데 불교는 오로지 愛人思想(애인사상)만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주 만물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의 가치가 있다. 철저하게 人本主義思想(인본주의사상)이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는 神本主義思想(신본주의사상)이므로 이들은 그 교리대로라면 상호 만날 수 없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은 이 둘을 합친 神人合一(신인합일) 사상이다.

불교는 自我(자아)를 探究(탐구)하고 자아를 啓發(계발)하고 자아를 上昇(상승)시키는 최상의 가르침이다. 이 점은 불교가 올바른 眞理(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는 自然(자연)의 法則(법칙)에 역행을 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은 種族保存(종족보존)의 법칙이다. 그러나 승려는 출가를 하여 결혼을 안 한다.

이러하니 자신은 어버이로부터 몸을 받아 태어나는데 자기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지 않고 후손이 없음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저승으로 그냥 간다. 이러하니 불교는 부모에 대한 孝(효)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불교에 부모은중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국악 가수인 김 영림은 이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하고...)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공자의 효사상과 접목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지 인도에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오로지 自我探究(자아탐구)만을 가르치지 인간이 어떻게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가 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정치는 석가 자신이 버렸음으로 정치에 대한 말은 없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께서도 현 민주주의 이전의 정치제도는 왕권전제주의의 세습주의만을 인식하고 계시므로 弘益和白(홍익화백) 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실 것이다.

이 글 다음에는 홍익화백주의 의한 현 민주주의 이후의 인류가 맞이해야할 정치제도를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으로 명쾌하게 제시 할 것입니다.

불교에 칭찬을 해 주고 필자 또한 그 것을 좋아하는 것을 하나 들라면 “바루공양”이다. 현 지구촌 인류가 가장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첨단무기 개발 경쟁이고 그 다음이 음식물쓰레기이다. 모든 음식물에는 쌀, 채소, 과일, 물고기, 육고기 이 모두가 다 생명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빼앗았으면 그 들에게 고맙고 미안함을 느껴야지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음식물을 함부로 많이 만들어 다 먹지 못하여 버리게 된다. 그 버리는 양 만큼은 생명을 빼앗지 않아도 되는 생명을 추가로 함부로 해치는 것이다. 이것이 죄라면 참으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 승려들은 바루공양에서 딱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는다. 그러니 낭비가 없다. 이 행위는 더없는 칭찬을 해줘도 된다.

◉ 儒學(유학)은 무엇인가?

儒學(유학)은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궁극의 목표이 고 완성이다.

그러나 유학은 앞에서 탐구한 왕권전제주의를 바탕으로 확립한 학문이 다. 즉 垂直的(수직적)인 사회질서를 세운 것이다.

필자는 2대 장남으로 할아버지의 교육을 20대 중반까지 받았고 같이 살았으니까 유교적 사회 질서의 환경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세대의 어르신들로부터 배우기를 자식은 부모의 명령에 절대 복종만이 허용되고, 부모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된다는 교육과 선생님의 그림자도 밝아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며 성인이 되었다.

어르신들로부터 배우기를 甲과 乙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두 친구가 누가 자식교육을 잘 시켰는가? 평가를 해 보자고 약속하고 먼저 甲의 집에 가서 甲이 친구가 보는 앞에서 그 자식에게“아무개야 지붕에 사다리를 갖다 걸쳐라.”고 하니까 자식은“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사다리를 지붕에 걸쳐놓으니까 이번에는“외양간에 가서 소를 몰고 지붕으로 올라가거라.”고 명령하니까 자식은“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라면서 소를 몰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甲이“애야 이제 됐다. 그만 거두 거라.”했고 이를 지켜보던 乙은 甲에게“자네 자식교육 잘 시켰네.”라고 칭찬을 했고 이번에는 乙의 집에 가서 앞의 甲과 마찬가지로 乙도 그 아들에게 사다리를 지붕에 걸치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사다리를 지붕에 걸쳤는데, 소를 몰고 지붕으로 올라가라고 하니까“아버지 갑자기 어떻게 되셨습니까? 소가 어떻게 지붕으로 올라간단 말입니까?”라고 대꾸하니까 이를 지켜보던 甲은 乙에게“자네는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네.”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甲과 같은 교육을 받았고, 그 시대까지는 그 것이 사회의 통념이었으며, 질서였다.

자- 독자여러분 이 두 친구 중에 甲과 乙의 자식교육이 누가 옳습니까? 또한 갑의 자식과 을의 자식 중에 누가 더 똑똑합니까? 또는 누가 더 효자입니까? 판단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弘益人間 在世理化입니다.

在世理化는 이치대로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즉 소를 지붕으로 몰고 올라가라는 명령이 이치에 맞는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국지의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유비에게는 아들 유선이 있었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의 아들이지만 유선은 그의 인물이 아버지에 못 미쳐 유비가 죽으면서 제갈공명에게 당부하기를“군사 내 아들 유선은 촉을 지킬 그릇이 못되니 군사께서 촉을 접수하시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주시오.”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고 그 지혜롭고 현명했던 제갈공명은 君臣(군신)의 義理(의리)를 져버릴 수 없다고 유선을 군주로 모시고 충성을 다하였다.

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와의 전투를 하는데 전세는 촉이 이기고 있어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위나라가 공작을 하기를 촉나라에 유언비어를 퍼트린다.“공명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하면 유선을 몰아내고 촉의 군주가 되려고 한다.”고 퍼트려 놓으니까 유선의 귀에도 그 말이 전해진다. 유선은 당황하여 아무런 명분과 이유도 없이 공명에게 회군명령을 하달한다.

전장에서는 공명의 참모들이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우리의 승리로 전쟁을 끝낼 수 있으니까 회군을 잠시 뒤로 미루고 전쟁을 승리로 끝 낸 후에 회군을 하자고 간언을 하나 공명은 군주의 명령은 곧 법이므로 이를 거역 할 수 없다면서, 다 이겨가던 전쟁을 중단하고 회군을 한다.

그 결과로 촉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공명의 사후에 위나라가 삼국통일을 한다.

이 대목을 분석해보면 그 지혜롭고 현명한 제갈공명이었지만 그 시대상황이 전후좌우가 모두 왕권전제주의의 환경이기 때문에 아무리 유비가 공명에게 촉을 접수하여 군주가 되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 하였어도 어떻게 평화적으로 대를 이은 유선을 군주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공명자신이 군주자리에 오를 방법을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우리의 한웅시대 배달과 단군시대 고조선의 홍익화백주의로서 임금을 선출 추대로 모시는 정치제도는 꿈도 꿀 수 없었기에 공명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필자가 왜 이런 일화를 소개하느냐? 하면 공자가 儒學(유학)을 정립하여 세울 당시의 사회 환경과 풍토가 제갈공명처럼 전후좌우가 모두 왕권전제주의로서 공자도 그 이상의 정치제도는 전혀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때의 시회는 왕권 전제주의로서 왕은 나라의 주인이고 백성의 충성은 오로지 임금에게 바치는 것이 충성이며, 효는 자식이 어버이에게 바치는 것이 효였다.

그러나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九誓(구서)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孝于家(효우가); 가족식구 모두가 가정을 위하여 孝(효) 하여야 한다는 뜻 으로 부모가 자식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어울리 는 協助者(협조자)인 것이다.

忠于國(충우국); 영도자도 나라에 忠誠(충성)을 한다는 뜻으로

임금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奉仕者 (봉사자)인 것이다.

無怨逆之患 親疎無別 上下無等 男女平權
무원역지환 친소무별 상하무등 남녀평권

老少分役... 自成和樂...一無憾且怫異者
노소분역 자성화락 일무감차불이자

남에게 원한 사는 일을 하지 않아 보복을 당하는 우환이 없었고, 친하고 친하지 않음이 없고, 위와 아래로 나누는 등급-계급도 없었다.

남녀는 평등하고, 노인과 젊은이는 그에 맞는 일을 하고, 스스로 성취하여 즐거움이 있고,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우리의 역사에서도 보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을 충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려의 충신은 근세조성에서는 임금을 섬길 수도 없으며 섬기지도 않았다. 근세조선의 악습들을 보면...

소학에 나오는 ◆ 七去之惡(칠거지악)- 不順舅姑(불순구고), 無子(무자), 淫行(음행), 嫉妬(질투), 惡嫉(악질), 口舌(구설), 盜竊(도절) 이 일곱 가지 일을 저질 으면 아내를 내 쫓을 수 있었고, ◆ 三從之義(삼종지의)- 어려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쫓음을 말함(삼종지탁, 삼종의탁) 이렇게 여자는 자립정신이 없는 하찮은 인간이고, ◆ 양반과 상민의 제도로서 양반은 상민을 노비로 부릴 수 있었으며 상민위에 군림하였다.

한 일화를 소개하면 상민이 양반을 등에 업고 냇물을 건너가는데 등에 업힌 양반이“내가 자네에게 말을 놓네.” 하니까 업고 가던 상민도“그럼 나도 놓네.”라고 놓으니까 양반은 물에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儒學(유학)은 왕권 전제주의의 바탕위에 세워진 수직적인 政治學(정치학)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 유학의 궁극 목표도 修身齊家(수신제가) 까지는 일반인들에게 적용이 되는 말이나, 이것도 家庭(가정)의 家長(가장)에게나 적용이 되는 말이고, 治國(치국)은 覇權(패권)을 잡아야 치국을 할 수 있으므로 패권을 잡기 위하 여는 선출 추대의 방식을 모르므로 오로지 물리력에 의한 쟁취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고 근세조선을 세우는 것이 유학의 학문에서는 정당화 될 수 있었고,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유비의 유언인 유선을 군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지신이 군주가 되는 방법을 모르므로 공명이 유비의 유언을 지킬 수 없었다.

공자는 春秋(춘추)의 말기에 태어난 사람으로 중국의 역사에서‘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하면 우리가 이를 낭만적으로 표현하여 群雄割據(군웅할거)의 시대라고 하지만, 영웅호걸들의 무리들은 광활한 중국의 영토를 놓고 마치 바둑판에서 땅 따먹기 하듯이 각축장을 버리던 때였다.

春秋戰國(춘추전국)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봄과 가을에 국가 간에 전쟁을 했다. 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깊은 의미는 봄과 가을 사이에 나라의 주인이 바뀐다는 뜻 일수도 있다.

이렇게 영웅, 호걸들은 호쾌한 나래를 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밑의 백성들은 그 시대에 태어났던 것이 얼마나 불행 이었겠는가. 백성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었을 것이고, 비참한 생활을 비켜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마치 소설책 보듯이 승자의 편에 서서 즐기고 있는데 그 당시 패자의, 다시 말하면 영웅호걸들의 도구가 되어 비참하게 죽어간 인명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람보(실베스타 스텔론)’는 수많은 역경을 딛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는데 그 승자‘람보’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람보의 총탄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즉 그 장면을 보는 시청자는 자신이 람보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승자로 착각하고 역사를 즐기는 것이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너와 나 그”까지를 배려하는 정신이 아닌가?

그 시대 그 장면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또는 죽는 사람들이 바로“너와 그”인 것이다. 또는 “나(我)”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늘날 지구촌 인류는 인간의 本性(본성)이 마비되어 람보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고 그 문화에 심취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홍익정신을 되살리지 않고는 앞으로 미래의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러한 환경을 목도한 공자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夏(하), 殷(은), 周(주) 三代 堯(요), 舜(순), 禹(우), 湯(탕), 文武(문무), 周公(주공)의 문화를 계승하여 孔子(공자; BC 551~479)에 이르러 詩經(시경), 書經(서경), 易經(역경), 禮經(예경), 春秋(춘추) 오경을 편찬하였고 공자는 鯉(리)를 낳았고 鯉는 子思(자사)를 낳았는데 子思가 中庸(중용)을 편찬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夏(하), 殷(은), 周(주) 삼대까지는 중국도 홍익정신에 의한 통치였던 것이다.

송 호수 박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堯(요)와 舜(순) 임금이 우리의 한웅의 배달 시대부터 단군의 조선 시대까지 1,500여년을 살다 가신 자부선인으로부터 수학 하였다고 했다.

“옛적에 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뵈옵고, ‘三皇內文’을 받아 ‘萬神’을 해소하다.”라고 되어있고, 또 태백일사에서는 이르기를 자부선생이 칠회제신의 역을 짓고 삼황내문을 천폐께 올리니 천왕이 치하하여 청궁을 지어 그곳에 살게 하였더니 共工(공공)씨와 황제 헌훤 씨와 창힐 씨 등이 모두 와서 배웠다라고 하였으니 공공씨나 헌훤씨나 창힐씨가 자부선생이 기거하는 동방의 삼청궁에 와서 수학하였고, 요와 순도 삼청궁에 와서 수학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시대에는 이미 그 때의 이념과 정신은 사라지고 춘추전국시대로서 왕권전제주의로서 각축장을 벌리던 시대였음으로 그 혼탁 현상을 바로 잡기위하여 옛 조상들의 문화를 계승하여 다시 바로 세우고자 했으나 공자의 학문이 역부족 이었던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대가 되어서인지, 또한 인간의 본성을 되살리지 못하고 垂直的(수직적)인 사회질서는 결국 실패한 것이다. 즉 중국은 공자 이후로 요,순 시대를 재현하지 못하였다.

지금의 중국은 貪慾(탐욕)을 加重(가중)시키는 사회질서가 되어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였다고 하는 소위 “동북공정”의 탐욕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이 탐욕스러운 세계관으로는 만족을 취할 수 없고, 탐욕은 탐욕을 낳을 뿐이므로 終局(종국)에는 좌절과 실패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過猶不及과유불급을 알아야지.”

우리는 이조에서 儒學(유학)의 사회질서를 구현 하다가 한민족의 역사에 가장 치욕스런 일제 35년의 역사를 초래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우리의 정신을 잃고 사대주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儒學(유학)은, 다시 말하면 孔子(공자)는 학문을 세운 성인으로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권전제주의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태어난 학문이라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홍익인간사상”은 이렇게 우리 ⌜한⌟민족만이 그 정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한⌟민족에게는 홍익정신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음으로 이를 복원하여 재현할 수 있다. 홍익정신이 아니고 현 지구상의 어떠한 가르침도 人類(인류)의 本性(본성)을 되살려 人類平和(인류평화)를 이룩할 가르침은 없다.

세계의 어느 석학이라도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어느 지도자라도 진정 인류평화를 걱정하고 人類愛精神(인류애정신)으로 고민을 하신다면 이 필자와 같이 고민도 좋고 아니면 論爭(논쟁)도 좋다.

누구든지 필자와 맞서도 좋고 동지가 돼도 좋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정신문화가 학문으로는“홍익인간사상”이 있고 自修鍊(자수련)으로는 仙道(선도)가 있고 信仰(신앙)으로는 巫俗(무속) 샤먼이즘이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우리의 巫俗信仰(무속신앙)을 迷信(미신)으로 치부하고 배척 했는데 우리의 무속신앙은 바로 崇祖思想(숭조사상)의 실천이다. 이 논리를 전개하자면 내용이 길어져 독자들께서 지루할 것이므로 48회에 이어지겠습니다. 세계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정신문화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또 있으면 나와 보아라!!!

위대한 조상의 자손인 ⌜한⌟민족은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되고 깨어날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닙니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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