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희 칼럼리스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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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君의 子孫 弘仁 朴鑽羲>


“弘益人間思想홍익인간사상은 무엇인가.”

〔자국의 역사를 스스로 왜곡한 민족〕

 

開國 號朝鮮 與高同時

개국 호조선 여고동시

<기존풀이> 조선의 개국은 “高=고”와 동시다.

※ 高(고); 唐(당)- 堯(요)를 말함

※ 원문은 한단고기를 말하고 기존풀이는 이병도 신화적 풀이를 말함

 

ㄱ)<檀君王儉> 開國 號朝鮮 與高同時

<단군왕검> 개국 호조선 여고동시

ㄴ)唐高卽位= 唐堯卽位 元年戊辰

당고즉위= 당요즉위 원년무진

開國 號朝鮮= 與高同時= 唐高卽位= 戊辰

개국 호조선= 여고동시= 당고즉위= 무진

 

위 단군조선의 기원을 알리는 기록으로 戊辰(무진)년을 말하고 있다.

 

즉 왕검이 조선을 개국한 해가 戊辰(무진; BC 2333)년 이라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개국(건국)은 기원전 2333년이고 오늘(AD 2012)년에 이어지는 년수는 4345년이다.

 

〔원문3〕古記云 昔有桓國<因>(謂帝釋也)

고기운 석유한국<인>(위제석야)

<기존풀이> 古記(고기)에 이르되 옛날에 桓因(한인) 帝釋(제석)으로 이름함이 있었다.

 

일제는 桓國(한국)의“國(국)”을 “因(인)”으로 바꾸어“桓國(한국)을 桓因(한인)으로”바꾸는데 시작 된다.

 

① 원문에서

(가) 古記云(고기운); 옛 기록에 이르기를 삼국유사 고조선은 魏書云(위서운), 經云(경운), 古記云(고기운) 등 3의 책자를 한정 하였겠는가,여러 고서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 昔有桓國(석유한국)

<기존풀이> 옛날에“桓<國>因”한인이 있었다.

※國을 因으로 변조하여 桓國(한국)을 桓因(한인)으로 번역함

 

이와 같이 桓國(한국)이라는 나라를 원천적으로 말살하고 “桓因(한인)”- 허상적인 사람 이름으로 둔갑시켜 昔有桓國(석유한국)- 옛날에 한국나라가 있었다.를 말살하고 “한인이 있었다.”로 하여 상고 시대의 나라 桓國(한국)의 實史(실사)를 虛史(허사)로 꾸며 신화작업을 했다.

 

※ 桓因(한인)

신화적인 번역에서는 한인을 허상적인 이름으로 하고 있으나 한단고기에 의하면 桓因=桓仁(한인)은 昔有桓國(석유한국) 영도자의 관직명으로 오늘 의 대통령과 같은 명칭이다.

 

이와 같이 옛 桓國(한국)을 말살함으로서 桓國(한국)에서 이어지는 한웅신시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실존도 부정하는 근원을 만들어 조선사를 고구려 2,000년사로 낮추어 일본기원 2500년보다 하위에 놓게 하는데 성공한다.

 

※ 이 일제 역사 날조 작업에 동참한 민족의 반역자는 이병도, 신석호, 이능화, 최남선 등 인데“만고의 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학파”들이 강단사학을 점령하여 식민사학을 가르침으로 이 땅에 식민사학이 뿌리를 내리게 됨으로 즉 역사는 그 민족의 정신일진대 우리는 정신을 잃고 오늘에 이르런 것이다.

역사의 날조와 왜곡은 일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고 그 실은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역사를 더 많이 왜곡하고 훼손 해 왔다는 것을 앞으로 입증 하겠다.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이씨 왕권 때 2차에 걸쳐 개간을 하였다.

1차 개간; 태조 2~3년 (1393~1394년)

2차 개간; 중종 7년(1512년)

왜. 개간하였을까. 미루어 볼 때 현재 전하는 삼국유사 고조선-기가 일연이 편찬한 원문일까. 하는 의문이 간다. 오늘날에도 역사는 헌법에 앞선다. 그래서 역사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역사는 국가의 틀과 국민의 사기가 담긴 곳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창건하고 고려의 구악을 청산하기에도 여념이 없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권을 장악한 이듬해“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성급하게 개간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는 이성계가 정권을 쟁탈한 쿠데타의 불의와 장차 이씨 세습통치에서 이들 사서에 和白(화백)제도, 홍익인간이념 등 세습에 상반되는 내용이 있어 이를 개서하지 않으면 걸림돌이 된다는 것으로 이런 부분을 삭제 또는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서를 성급하게 개간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이조 초기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손을 대 가지고 일제로부터 우리역사의 단군시대 이전의 역사를 신화로 설정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비롯 식민사학이기는 하지만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역사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교육이 교과목에 들어 있지도 않다.

 

사람은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返照반조 해 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민족은 역사가 그 민족의 根間근간이고 精神정신이다.

 

歷史역사를 잃으면 民族민족을 말할 根據근거를 喪失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精神정신을 잃으므로 얼간이가 되어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어데고, 어데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상실함으로 먼저 우리의 말을 가르치기 전에 영어를 먼저 가르치기에 혈안이 돼 있다.

 

우리는 지금 국민의 민족의 體統체통을 내 팽개치고 남의 밥의 콩이 굵은 것만 보고 쫓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사상은 四分五裂사분오열 된지 오래 이고 이 者자들이 통일을 기원하는 조찬기도회니 뭐니 하는 것은 그야 말로“얼간이들의 꽤 춤이다.”그래도 그 놀음에 가서 땃다붓따 해야 사회에서 방귀깨나 뀌는 대열에 선다.


자- 사랑하는 동포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어데로 가야하는 지를 필자가 말 할 것입니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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