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는 절대善이 아니다 -

<사진= 박창희 칼럼니스트>

남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내 권리(탐욕)만 채우겠다는 집착은 결국 모두가 같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세상에 그 자체로 완벽한 제도는 없다.

인간들이 좋은 쪽으로 끊임없는 교정을 해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를 남용하므로 자멸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 변론가 '이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인간의 속성을 꿰뚫어 보고 현재의 그리스 사태를 미리 예측한 것일까?

오늘날 그리스는 이소크라테스의 예언이 적중한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그 길을 답습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소크라테스의 다음 말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자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시민들에게 뻔뻔함을 권리, 無法을 자유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스가 그랬고 한국이 지금 그런 현상에 직면해 있다.

좋은 쪽으로 교정해 나가는 노력 없이 남용하다가 맞는 최후가 자멸이다.

전국이 지금 노조 파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국민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지속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의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도 등 공공 부문의 파업이 물류 대란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이치다.

정부에서는 불법이라며 엄중 대처를 말하지만 이들은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파괴적이요 자해적인 파업 행태를 권리로 여기는 것은 인지력에 문제가 있다.

만약 이것이 현행법상 합법이라면 법이 잘못된 것이다.

모두가 민주주의의 남용이요 잘못 학습된 것이다.

몇 년 전 그리스가 망할 때 국영철도회사의 연간 수입은 1억 유로에 지출은 임금만 4억 유로였다는 신문 보도를 봤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철도와 지하철도 현재 적자 운영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선거 승리에만 초점을 맞춰 노조원들의 요구에 무릎을 꿇거나 영합하려는 세력이 확장된다면 우리도 별수 없이 망하는 구조로 가는 것이다.

모두가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남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내 권리(탐욕)만 채우겠다는 집착은 결국 모두가 같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기적 탐욕을 권리라는 뻔뻔함, 질서의식의 실종을 자유라는 뻔뻔함, 이는 모두가 민주주의의 남용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지금 이의 정착 단계에 와 있는 듯하다.

지금이라도 이를 교정하지 못하고 끝을 보자고 한다면 결국 자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가 꼭지에서 굴렀다면 우리는 지금 몇 부 능선쯤에 와 있 을까?

大勢가 두려움 없이 그 길을 재촉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제발 누가 좀 막아주길 기도 한다 

<태초로 金泰植 先生>의 글에서...

이렇게 망해가는 현 民主主義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에 대안을 제시한다.

 

〔弘益和白主義〕

① 홍익인간사상은; 一元論(일원론)이다. ※ 홍익인간사상은 일원론을 이해 하지 못하면 弘益(홍익)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
②「한」; 桓者 全一也 光明也(한자 전일야 광명야)

全一 爲三神之 知能(전일 위삼신지 지능)

光明 爲三神之 實德(광명 위삼신지 실덕)

乃 宇宙萬物之 所先也(내 우주만물지 소선야)

「桓한」이란 모두를 하나로 함이요 밝은 볕이다.

全一; 소선 이는 우주 만물에서 으뜸이니라.

삼신하나님의 作爲(작위)는“全一(전일)”모두를 하나로 한다. 는 뜻이다.

즉, 인간사는 만물을 사이(間)에 두고 어울려 작위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를 “桓한”이라고 한다. 홍익인간사상의 학문은「한」에서 출발한다.

③ 홍익인간사상은; 神人合一思想(신인합일사상)이다. ※ 人間(인간)은 神 의 分身(분신)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홍익의 문 턱을 넘을 수 없다.

④ 홍익인간사상은; 敎政一致(교정일치) 사상이다.

⑤ 홍익인간사상의 궁극의 목표는; 一無憾且怫異者(일무감차불이자)

衆議一歸 爲和白(중의일귀 위화백)이고,

⑥ 이를 이루기 위하 여는; 忌三(기삼)- 僞-거짓, 怠-게으름, 違- 어김을 하지 말고.

三道(삼도)- 眞-참, 勤-부지럼, 協-어울림에 기 준함으로 사사로운 편견은 자연 도 태 되고 회의의 귀착점 즉 참을 발 견 모두가 만족하게 하여 하나로 모 을 수 있게 한다.

天 眞一 無僞(천 진일 무위)
地 勤一 無怠(지 근일 무태)
人 協一 無違(인 협일 무위)

“거짓, 게으름, 어김”을 없이하고“참되고, 부지런히, 서로 어울림”을 같이 한다는 기준에서 토의 한다면 즉 편견에 기울지 않는다면 모-든 인 간사의 결정이 一歸(일귀)-“하나”로 귀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홍익화백 회의방식으로 衆議一歸 爲和白(중의일귀 위화백)하는 토론방식이다.

자- 이러한 정신의 바탕위에 뒤의 典據(전거)를 분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앞글에서도 누누이 밝혔듯이 서구의 唯一神思想(유일신사상)에서 발원한 二元論(이원론)의 思考(사고)로서 발전한 인류의 문명이고 認識體系(인식체계)이다.

동양도 서양문명에 예속됨으로 서양의 思考(사고)의 한계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현 인류의 실상이다.

앞에서 一元論(일원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홍익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 필자도 이원론의 인식체계를 부수고 일원론의 가치관을 받아 드리는데 까지는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앞서간 세 선지자의 어록을 빌어 필자의 이글을 쓰는 심정을 밝히고자 한다.

“맹자의 어록”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맡길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의지를 피곤하게 하며, 그 뼈와 근육을 괴롭게 하고 몸과 피부를 메마르게 하며, 살림을 가난하게 하여 그가 하는 일을 어지럽히고, 실패하도록 온갖 시련을 주어 마음에 참을성을 길러 능히 하지 못한 바를 채우고 보태도록 한다.

“만해 한용운의 어록”

근본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면 결국에는 파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 비추어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용감하게 추진하라 그 길이 가시밭이라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통쾌한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만해가 일제를 향해 부당함을 지적하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말이라고 본다.)

“백범 김구의 어록”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사상은“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가 아니고”“서로 돕고 살아라 이다.” 弘仁 朴 鑽 羲 書

단기 4346년 10월 3일 개천절에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까 모든 아나운서 또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진행자들이“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다.” 라고 하는데, 하늘이 언제는 닫혀 있었는가? 아직도 그 날이 나라를 세운 날이라는 것을 모르고 신화만을 되 뇌이고 있으니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이렇게 한탄을 해 보며...

※ 開天節(개천절); “우리나라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 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다. 그런데 왜? 방송인들은 신화만을 주절거리 는가? 개천절은 올해로 5909주년이다.

桓國(한국)의 智爲利(지위리) 桓因天帝(한인천제)께서 居發桓(거발한) 桓雄天皇(한웅천황)에게 率徒三千(솔도삼천)하여 태백으로 내려 보내면서 可以 弘益人間(가이 홍익인간)하라고, 즉 다시는 싸우지 않는 평화의 세상을 건설하라고 내리신 유지를 받들어 神市(신시)에 倍達國(배달국)을 개국한 것이 開天節(개천절)=開國節(개국절)이다.

王儉(왕검) 檀君(단군)이 800의 동지를 이끌고 아사달로 옮겨와 朝鮮(조선)을 건국하고 음력 10월 3일에 즉 배달국의 건국기념일에 天祭(천제)를 올리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양력 개천절로 하는 것을 원래는 음력이 유래이고, 건국기념일이다.

현 세계의 대세인“민주주의”를 조명해 보고 “홍익화백주의”를 전개하겠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탐구하기 전에 먼저 인류사회에 가장 짧은 기간에 떳다가 사라져간 공산주의를 살펴보자.

공산주의의 학문은 독일인 엥겔스와 칼마르크스가 1846년에 <공산주의통신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1847년에는 <정의자동맹>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개편하여 1848년 쾰른에서 <신라인신문>을 발간하여 공산주의 이론을 확산시켰다.

① 렌닌의 공산주의 혁명

렌닌은 1870년 4월 22일 러시아 심비리스크에서 태어났고 그는 1917년 2 월에 굶주림과 추위와 전쟁에 지친 군인들이 황제를 몰아내자, 1917년 11월 7일 볼세비키 적위대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새 정부를 탄생 시켰 으며 인민위원 소비에트의 의장이 되었으며, 그리고 6년 후 1924년 1월 21일에 뇌경색으로 사망하였다.

렌닌은 공산주의 학문에서 공산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최초의 사람이다.

② 스탈린의 공산 통치

스탈린은 1878년 12월 18일 조지아에서 태어났고, 스탈린의 이론적 저서 로는 1906년 <무정부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를 저술 했는데 이것은 동시 에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며, 이 논문은 1938 년에 제 4장으로 개정되어서 <소련공산당 소사(小辭)>로 출간되었다.

스탈린은 1922년 4월 당 서기장으로 임명되었고, 렌닌이 죽은 후 1924년 1월 정적인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부하린으로 이어지는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1929년 12월 50회 생일을 전후하여 소비에트 당과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933~1938년 기간 동안 그는 유대계 등 소수 민족주의 사회주의자 등을 처형대로 보내 수 백 만 명을 죽였으며, 스탈린은 이 기간에 3,000만명 이상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켜 이 중 절반가량이 질병 또는 굶주림으로 죽게 하였다.

1940년 4월 스탈린은 비밀경찰(NKVD)이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지역인 카틴 숲에서 전쟁 포로로 붙잡힌 폴란드 장교 등 군인 22,000여명을 살해 했으며, 재임 기간 중 소련 군인과 민간인 모두 합쳐 2천 300만 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폭군의 지도자 한 사람이 지구상에 나타나면 인류를 이렇게 말살을 하고 있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이며, 이것은 인간의 잔악상이지 神의 짓이 아니다.

※우리의 고려인들도 연해주에서 17만 명을 화물열차에 마치 짐짝처럼 싣고 가다가 5만 명은 도중에 죽고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 갈대밭에 팽개쳐 졌는데, 살아남은 12만 여명은 끈질기게 살아나 황무지를 옥토로 일구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 소련 인들이 고려인을 가리켜“빨가벗겨서 시베리아의 눈 속에 던져놔도 이튼 날이면 밍크코트를 입고 나오는 민족이다.”라고 평 했다는 것이다.

③ 위대한 인간“미하일 고르바초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31년 3월 2일 태어났고 소비에트 연방정치가로 제11대 소련의 국가수반 겸 당서기장을 역임 하였으며 54세가 되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고, 1985년부터 1990년 3월말까지 소련의 총리로 있었으며, 유럽 공산주의국가에 개혁개방 정책을 펴 소비에트연방 해체를 통하여 동서 냉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위대한 두 사람에 의하여 세상이 바뀌어간 과정을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의“처음만나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탐구해보자.

고르바초프의 당 서열이 꾸준히 높아진 것은 전임 서기장들이 줄지어 사망하면서 수혜를 본다. 1982년 11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1984년 2월 유리 안드로포프 1985년 3월에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르바초프는

1983년 캐나다, 1984년 영국에 파견된 소련 대표단의 수장으로, 음산하기만 한 전임자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이미 서방이 눈여겨보던 인물이었다.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는‘같이 일해 볼 만한 인물’이라고 고르바초프를 평했다.

고르바초프는 1985년 3월 정권을 잡자마자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혁을 제안했다. 사회 및 정치적 개혁을 통해서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시민의 창의력을 자극해 주도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기하고, 정보공개를 뜻하는 개념인’글라스노스트gtasnost'를 정책적으로 밀어 붙였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최고 소비에트 의장을 거쳐 1990년 3월 15일 아무런 반대 없이 소련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다.

1989년 7월, 고르바초프는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모두 함께 사는 유럽common European home"을 언급하며 이렇게 연설 했다.

과거 사회 및 정치 질서가 바뀐 나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지만, 전적으로 각 나라의 인민이 결정할 일이다. 다른 나라의 내정 간섭이나 주권 침해 시도는 친구나 우방을 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한편으로 여전히 공산주의에도 이점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갈등 없이 사이좋게 사는 유럽을 꿈꾸었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고르바초프의 믿음이 소련 개혁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는 공산당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근본적으로는 사회주의 이지만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 혼합경제가 실현되는 사회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체제의 모순이 곧바로 드러났고, 보리스 옐친이 주도하는 개혁파는 고르바초프 논리의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고르바초프가 정치적 다원주의, 표현의 자유, 자유선거를 양보한 이상 공산당이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리스 옐친; 1931년 2월 1일 러시아에서 출생 2007년 4월 23일 사망〕

보리스 옐친은 솔직한 발언 기회를 십분 활용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르바초프를 공격하며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소련을 구성하던 구심점과 주변 위성국들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1991년 6월 옐친이 처음 시행된 러시아 대통령 민주선거에 후보로 출마해 57퍼센트를 득표했다. 옐친은 즉각 공장 등 노동현장에서 결성된 정당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전통적으로 공산당의 권력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약이 마련돼 소련은 외교 및 안보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잔류공화국들(저마다 민주주의 도입을 약속했다.)의 연방으로 변모 했다.

갈수록 소외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개별 공화국들과 1991년 8월 20일 이 조약에 서명한다.

p450~451의 내용이다.

소련이 무너져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수구 세력은 최후의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크리미아 반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KGB 수장이던 블라디미르 크루치코프는 사전 모의된 계획을 행동에 옮겼다. 공산당 고위 인사 몇 명이 1991년 8월 18일 크리미아 반도로 날아가 고르바초프에게 비상사태를 선포해 정책을 뒤집든가 사임하라는 압력을 가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두 가지를 모두 거부했다.

음모를 꾸민 일행은 모스크바로 돌아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TV, 라디오, 신문 등이 폐쇄됐으며 탱크를 앞세운 병력을 수도 심장부까지 배치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보리스 옐친은 황급히 러시아 대통령 관저로 향했고 8월 19일 아침 9시에 도착했다. 방송 매체가 쿠데타 지도자들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옐친의 지지자들은 전단을 만들어 도시 전체를 돌며 시민과 군에게‘반동적인’쿠데타 세력을 지지하지 말고 총파업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옐친은 또 고르바초프가 대국민 연설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 세계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초강대국의 운명이 모스크바 거리에서 펼쳐졌다.

러시아 대통령 관저는 옐친 지지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면서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고, 관저를‘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된 기갑사단 사령관은 러시아와 러시아 대통령에 충성할 것을 선언했다. 옐친이 적색 군 탱크 위에 올라 지지호소 연설을 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옐친은 쿠데타가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이라고 비난했고 군중에게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인민은 엄청난 어려움과 극심한 시련을 겪고 있지만, 이 나라의 민주주의

이양 노력은 지지하는 이들이 날로 늘고 있으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이튼 날 머뭇거리던 쿠데타 세력은 대통령 관저를 접수하려는 시도를 단념하고 크리미아 반도로 날아가 고르바초프와 해결책을 재협상할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타협을 거부했고 공모자들은 모스크바로 돌아오자마자 체포되었다.

공산당은 이제 신생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로 여겨졌고 옐친은 즉각 러시아의 공산당 소유 자산을 국유화하고 자료 보관소를 장악했다. 고르바초프는 총서기장직을 사퇴했고 공산당은 석 달 후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그해 12월, 고르바초프가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lndependent States을 결성하는 조약에 서명해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6년 동안 고달픈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고르바초프는 12월 25일 소련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망치와 낫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크렘린 궁에서 내려졌다.

소련이 사실상 피를 흘리지 않고 공산 전체주의에서 다원적 민주주의로 이양한 과정은 기적에 가깝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해방하는 데 성공했지만, 국가의 통제를 받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결합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그의 꿈은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이렇게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의 종주국에서는 피를 흘리지 않고 그야말로 극적으로 반전이 되었는데, 1917년 11월 7일 렌닌이 볼세비키 혁명으로 소련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 후 1991년 12월에 고르바초프가 독립국가 연합을 결성하는 조약에 서명함으로 74여 년 만에 공산주의 종주국의 막을 내리게 된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엄청난 인민을 잔악하게 학살을 하였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로의 전환과정에서 보듯이 민주주의는 통치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고 국민을 위한 제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처칠 수상은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여태껏 채택했던 모든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치 체제다.”또한 “민주주의는 예측 불가능하고 은혜도 모른다.”하지만 “현행 민주주의가 비롯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제도가 나오기 전에는 이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는 인간에 의하여 창출되고, 그 역사를 창출하는 주인공의 현명함과 우매하고 잔악함에 따라 인류는 비극과 희망으로 갈린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조상의 가장 지혜로운 가르침에 의한 미래의 인류평화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조시대를 살다간‘다산 정약용’은 儒學(유학)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통치자들의 바른 통치를 제시하는“牧民心書(목민심서)”를 내놓았었지만 조정에서는 기울어져가는 이조의 시대적 潮流(조류)를 이기지 못하고 다산의 목민심서에 관심을 보이지 못했으나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한‘호치민’은 그 목민심서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하여 기독교도들이 바이블을 항시 끼고 살듯이 호치민도 목민심서를 항상 끼고 살았으며, 죽을 때 유언으로 “목민심서를 내 머리맡에 놓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지자의 위대한 가르침도 그 시대의 조류에 부합을 해야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칼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학문은 1세기에 가깝게 인류를 비참한 죽음에 빠트렸으나 다산 정약용의 학문은 그의 조국에서는 외면당하고 타국에 가서 빛을 보였다.)

이와 같이 이제는 지구촌 인류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시기에,

필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가르침의 바탕위에 앞에 영국의 처칠 수상이 지적했듯이 人類平和(인류평화)에는 미흡한 현 민주주의를 개혁하고 인류에 가장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弘益和白主義(홍익화백주의)를 提唱(제창)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어서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至高至善(지고지선)의 가치로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탐구해보자.

민주주의의 시작은 아테네 집정관 리시마쿠스Lysimachus의 치세하(기원전 436~435)에 500인의 평의회에서 시민이 번갈아가며 작은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고 나면 투표가 시작되었다. 손을 들거나 도자기 조각을 항아리에 던져 의사를 표명한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기원을 알리고 있으나,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에 정복을 당한 기원전 323년부터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까지 2,100여년에 걸쳐 이렇다 할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그 사이에도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산발적으로 시도하고 있었으나,

p168 하단의 기록을 옮기면 18세기 영국의 선거 정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편 가르기, 부정부패, 잇속 챙기기 등이 기가 찰 정도로 만연했고 공식적인 견제와 균형은 찾아보기 어렵다. 혈연에 기대거나 소수 유권자를 매수해서 의회에 진출하곤 했다. 당선된 의원들은 대부분 의정활동은 뒷전이었고, 대개 상원의 소수 귀족 도당이 사실상 나라를 쥐고 흔드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민의 대표로서 책임을 기대할 수 없었다.

1721년에서 1832년 선거개혁법Reform act이 통과될 때까지 취임했던 24명의 총리 중에 16명이 상원 의원이었다.

우리의 국회의원 중에는 영국의 잘 발전한 국회 상을 예로 들면서 우리의 현 저질스러운 국회를 질타하기도 하나, 영국이라는 나라도 처음에는 이렇게 유치하고 저질스럽게 출발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p170의 상단에 18세기 유럽의 정치인들은 아주 엷은 사회계층에서 배출되었고 이런 형편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하원은 으레 귀족과 젠트리gentry 계급(중세 잉글랜드 신분 계급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귀족은 작위 귀족과 그 아래인 젠트리 계급으로 나뉘었다.) 젠트리는 또 크게 기사knighr, 에스콰이어esquire, 젠틀맨gentleman 순의 3계급으로 구분된다.

p175 유럽의 시민이 더 강력한 국가 권력에 굴복하던 시절, 미국은 전대미문의 규모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있었다.

미국의 새로운 체제는 다른 어떤 민주국가들보다 오래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초반 70여 년 만에 미국은 온 세계가 귀감으로 삼게 된 민주적 관행과 원리들을 고안하고 실천했다. 1840년대가 되자 미국의 모든 백인 성인 시민은 州(주)는 물론 연방 선거에서 투표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도 다음의 기록을 보자. p190 하단에, 선거권은 여전히 사유재산을 기준으로 했고 새 연방정부 역시 참정권의 자격 요건을 개별주의 자율에 맡겼다. 여섯 주에서는 자격 요건이 완화되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기존 잣대를 고수했다. 하지만 사유재산 기준을 아예 철폐한 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알렉산더 해밀턴은 1804년 7월 정적이었던 부통령 에렌 버Aaron Burr와 결투를 벌인 끝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p318 세계 각국 성인 남성들의 권리가 확대되자 상대적으로 빈약한 여성의 입지가 부각되었다. 미국에서는 수잔 B, 앤서니Susan B. Anthony라는 여성 운동가가 1872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했다 체포 되었고, 재판 결과 불법 투표 혐의가 인정돼 1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189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1894년 뉴질랜드에 이어 1902년에는 호주에서도 여성들의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1905년 여성사회정치동맹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 회원들이 자유당 회합을 무산시키는 사건이 터지면서 영국에서도 여성 투표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여성들의 강력한 참정권에의 투쟁 끝에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참정권의 권리가 보장 된 것이고,

※ 오늘날 중국은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이고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로서 인민들에게 부분적인 자유만을 허용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중국의 인민들이 참정권의 권리를 달라고 외치고 나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의 거대한 중국이‘지나족’이 중심이 돼서 55개 소수민족을 단일국가로 묶어서 통치를 하고 있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p324에 1917년 초, 러시아가 손실만 초래하던 전쟁에 휘말리고 황제가 그 선봉에 서느라 자리를 비운사이, 자유주의 및 사회주의 대의원들이 강제로 황제를 폐위시키고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남성 보통선거를 통해 제헌의회를 만들어 러시아를 위한 새로운 헌법을 마련할 때가지만 집권할 과도기적 정부였다. 하지만 제헌의회를 소집할 겨를도 없이 1917년 10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연정을 볼세비키 세력Bolsheviks(소련 공산당 전신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다수 급진파를 가리키며 그 수장이 바로 렌닌이었다.)에 권력을 빼앗기고 만다.

볼세비키는 선거를 신뢰하지 않았다. 1907년 렌닌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아무리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이라 하더라도, 부르주아가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극소수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을 기점으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양대 세력이 소위 냉전의 시대를 이끌어오다가 1991년 12월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독립국가 연합을 결성하는 조약에 서명함으로 74년을 유지 해오던 공산주의 종주국이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 국가로 평화적으로 전환을 함으로 냉전의 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이로서 현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 중국, 쿠바 등이 있는데 이들 국가 중에 쿠바는 지도층이 인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으나 현 북한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붕괴되고 개방을 하지 않으면 경제가 파탄이 날 것임으로 북한이라는 국가는 지금 시한부 국가이다.

중국은 앞에서 언급 하였듯이 중국 인민은 유서 깊은 문화 민족인데 끝까지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은 상태로 이끌어가지 못할 것이다.

“弘益和白主義홍익화백주의 만이 人類인류를 살리는 길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의 대세는 이제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중동지방도 독재주의를 마감하고 민주주의로 넘어가기 위하여 몸부림 치고 있으며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는 앞글에서 누누이 언급하였듯이 서구의 唯一神思想(유일신사상)에서 발원한 二元論(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성장해 온 제도임으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일찍이 영국의 처칠 수상이“현행 민주주의는 비롯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제도가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라고 하였는데 이 필자가 처칠도 고대했던 “완전한 제도”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인류의 人間事(인간사)는 二元論(이원론)으로는 절대 풀 수 없다. 이원론은 적대적 관계가 형성이 됨으로 反目(반목), 對立(대립), 鬪爭(투쟁)의 시작이다. 이 이원론은 스포츠 게임에서 만이 존립의 가치가 있고 존립의 당위성이다. 스포츠는 개인종목을 빼고 겨루기 종목은 편을 갈라야 경기가 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人間事(인간사)는 一元論(일원론), 神人合一思想(신인합일사상)이 아니고는 반목과 대립과 투쟁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서구에서 여과 없이 받아드린 제도 二元論(이원론)을 폐기처분 하고 우리의 一元論(일원론)을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革命的(혁명적)인 발상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

1세기 전에 인류는 칼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학문에 홀려서 공산주의라는 인류역사에 가장 짧게 등장했다 사라져간 제도로서 지구촌을 피로 물 들였었는데, 지금 필자가 提唱(제창)하는 人類平和(인류평화)의 법칙에 귀 기울여야 된다.

2,000여 년 전에 예수는 구약에 의한 유대민족의 選民思想(선민사상)을 타파하고 개혁을 하려다 실패하고 좌절한 역사가 있다.

그래서 유일신사상에 의하여 기독교는 처음 시작부터 지금 현재까지 싸움을 멈춘 적이 없다. 앞으로도 이 사상이 존재하는 한 지구촌은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필자가 主唱(주창)하는 一元論(일원론)의 人間事(인간사)는 인류를 살리는 길이다.

지구촌의 과거부터 현재의 인류는 짐승들도 하지 않는 행위를 하며, 소위 萬物(만물)의 靈長(영장)이라고 自慰(자위)해 왔다.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이야 말로 참으로 가소로운 존재들이다.

우리의 위대한 조상님들은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人間本性(인간본성)의 法則(법칙)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치셨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부뚜막의 소금을 놔두고 남의 밥의 콩이 굵은 것만을 보고 추종하기에 혼이 빠져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는 패권주의 시대가 아니다. 즉,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21세기신문화연구회엘 나가 보면 거기에 나오는 모든 인사들이 무슨 비결서에 예언이 되어 있다고 우리 한국이 앞으로 세계의 지배국가가 된다고 하는데, 이제 인류는‘지배’라는 단어는 지워버려야 할 시대가 도래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이 주장을 세치 앞만을 보는 식견으로는 미친 소리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적인 관점에서 또는 지구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인류가 살아 온 긴 역사를 관통해서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가 힘에 의한 二元論(이원론)의 바탕위에 세계를 지배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세계를 지배하는 근본 바탕이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옛 왕정시대의 제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인류의 문명은 발전과 진화를 해 온 것이지 퇴보를 한 게 아니다.

앞으로도 인류는 발전하고 진화를 할 것이다. 그 것이 우주의 법칙이니까.

다가오는 시대는“支配지배”가 아니라“指導지도”의 시대라는 것을 알린다. 세계를 指導할 가르침 思想은 우리「한」민족에게 밖에 없다.

그래서「한」민족의 使命(사명)이 막중한 것이다.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 한 이후로 先史時代(선사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인류는 神을 認知(인지) 하면서부터 역사는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神과 人間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에 따라 그 족속의 문화는 判異(판이)하게 형성 되고 발전해 왔다. 동양의 문화는 神과 人間을 별개로 본 것이 아니고 合一(합일)로 보고 출발을 하였으나 현재의 세계문화 세계질서는 서구의 唯一神思想(유일신사상)에서 출발한 즉, 神과 人間을 별개로 설정한 兩分法(양분법)인 二元論(이원론)에 의한 문화가 지배함으로 동양도 어쩔 수 없이 그 한계를 못 벗어나는 현실이다.

일찍이 예수는 유대민족의 唯一神思想(유일신사상)에 의한 選民思想(선민사상) 兩分法(양분법)인 二元論(이원론) 이것을 타파하고 神人合一思想(신인합일사상)을 세워 인류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성인이다.

그러나 그 때의 유대민족과 그 지방의 인류(로마제국)는 예수의 이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유일신사상을 더 고취시키는 문자주의 파들이 영지주의 파 들을 제거하고 獨善(독선), 排他(배타), 利己(이기)의 정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 서구의 문명이고, 이 서구의 문명에서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민주주의이다. 현 우리의 정치꾼들은 가다가 말이 군색하면“민주주의 하자는데!”라고 외친다.

지금 현재도 야당 집단에서 민주주의를 복원 하겠다는 명목으로 시청 앞에 천막을 쳐 놓고 무던히도 더웠던 올여름의 뙤약볕에서 투쟁을 하다가 이제는 지쳤는지 국회로 들어갔다.

인류의 역사는 정치에 의하여 창출되었고, 정치는 인류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근본이다. 정치가 없으면 인류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고 인류의 살림살이를 꾸려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없으면 인류가 살수 없는 정치를“홍익화백주의”에 의하여 바로 세워 보겠다.

◉ 群行而 無怨逆之患 親疎無別 上下無等 男女平權
군행이 무원역지환 친소무별 상하무등 남녀평권

老少分役 自成和樂 一無憾且怫異者
노소분역 자성화락 일무감차불이자

남에게 원수를 사는 일을 하지 않아 보복을 당하는 우환이 없었고, 친하고 친하지 않음이 없고, 위와 아래로 나누는 등급-계급도 없었다. 남녀는 권리를 고르게 하고, 능력에 따라 일을 나눔으로서, 스스로 화목과 즐거움을 누려,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여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요, 인류가 갈망하는 念願(념원)이며, 弘益人間

(홍익인간)의 本性(본성)이다.

發政莫善於和白(발정막선어화백)

정치는 화백보다 앞서는 것 없고

治德莫善於責禍(치덕막선어책화)

덕으로 다스린다함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官無兼權(관무겸권) 행정은 권력을 겸하여서는 안 되고

政無越則(정무월칙) 정치는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明知于政事(명지우정사) 정치는 가리지 않고 밝게 알린다.

一無憾且怫異者(일무감차불이자)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게 하지 않는다.

衆議一歸 爲和白(중의일귀 위화백)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하나로 모은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 제일 적용하고 시행하기 어려운 대목이“중의일귀 위화백”이다. 단군 시대에는 단순한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 하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사회가 헤아릴 수 없게 복잡하고 다양화 되어서 상호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이것을 하나의 뜻과 의견으로 모으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은 시대상황에 맞게 다수가결제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제일 중요한 초점은 ①二元論(이원론)를 아예 폐기처분하고 一元論(일원론)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다음은 ②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다.

현행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입법부인 국회의원만 임명을 못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는 모든 임명권을 쥐고 있다.

옛 왕정시대에는 입법부는 아예 따로 없었고, 행정부가 입법을 같이 했고, 사법, 행정을 모두 왕이 통치하였는데, 그래서 현군이 나오면 백성은 편안 했고, 폭군이 나오면 백성은 고달프고 비참했다. 또한“짐의 말이 곧 법이니라”고 했을 정도이다.

먼저 이원론을 폐기하고 일원론의 제도를 세우기 위하 여는 이원론의 근본인 정당 제도를 폐기해야 된다. 이 정당제도야 말로 반목, 대립, 투쟁의 본산지이다. 그래서 헌법으로 정당 제도를 규제해야 된다.

즉, 정당결성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를 해야 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서로 연관이 돼서 살아가는 것이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 났고 앞으로 모든 나라와 나라사이에 상호 의존하여, 아니 협력하여 살아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인류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반목과 투쟁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자- 여기까지 말하면 혹자는 홍익화백주의를 한다면서 독재를 하자는 것이냐? 라고 들이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自由(자유); ①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함.②남으로부터 규정, 구속, 강제, 지배를 받지 않는 일.

放縱(방종); 아무 거리낌 없이 제 마음대로 놀아먹음.

責任(책임); ①도맡아 해야 할 임무나 의무. ②불법 행위를 한 자에게 법 률 상의 불이익 내지 제재가 가해지는 일(민사 책임과 형사 책임으로 나뉨).

이렇게 사전에 나와 있는데, 홍익인간은 이 세 낱말을 잘 구분해야 된다.

이것을 구분 못하면, 다시 말하면 他人(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 홍익이 아니다. (년 전에 탈랜트 옥소리라는 여인이 외간 남자와 간통을 하여 남편과 이혼을 하였는데, 그 것도 부족하여 헌법재판소에‘성’ 선택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는 명목으로 헌법소원을 냈다가 기각을 당했는데, 언론에서는 이 간통죄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인간은 어느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분간을 못하고 있다.)

홍익인간은 나(我)가 나의 주인이다. 나를 주재하는 다른 주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주인인 내가 책임이다. 책임과 의무가 앞서가지 않는 것은 홍익이 아니다.

정당 제도를 폐기하면 세상이 바뀐다. 먼저

①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一擧(일거)에 해결하고, 우리만의 특색인 ②영, 호남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결한다. ③중앙당에 폐지됨으로 국고 보조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니까 국민의 세금을 낮출 수 있다. ④ 남,북이 통일 후에 갈등을 방지하고 화합할 수 있다.

⑤그 지역출신으로 애향심을 가진 진정한 善良선양 들이 국회에 진출 한다.

오늘날의 정치꾼들은 그의 명성만을 가지고 자신의 지역구도 아닌 타 지역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국회에 입성하여 국가의 세비만을 축내고 있는데 그런 자들을 뽑아주는 국민들의 민도도 아직은 홍익의 사회와는 요원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례대표라는 것은 자연히 도태되고 국회의원으로 국가와 그 지역구의 주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는 진정한 지역 일꾼만이 그 지역의 대표로 국회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역구를 바꾸어 보궐선거에 나아가서 국회에 입성을 해 본들 그 짧은 임기 내에 그 지역의 실상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임기를 끝내고 만다. 참으로 다른 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후진중의 후진 정치이다.

※ 남과 북이 통일이 되고나면 남,북의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영호남의 갈등도 해결을 못하고 있는데 장차 통일이 되면 그동안 이질화가 심화된 남과 북 주민들의 갈등을 무엇으로 해결 할 수 있는가? 통일론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이 점을 깊이 성찰하고 연구를 해야 될 것이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우선 물리적인 통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있지 통일이 되고 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한⌟ 민족으로서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는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현 상황대로 물리적인 통일만 이루고 나면 그 다음에 올 시련에 대해서는 아무도 걱정을 안 하고 있다. 단지 코앞의 일만을 고민하느라 미래를 내다 볼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정당 제도를 이대로 가지고 가면 통일 후에는 북한만의 정당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현재에도 특정 정당의 지역에서는 중앙당으로부터 공천만 받으면 말뚝 또는 허수아비 같은 인물을 꽂아놔도 당선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다시 정리하면,

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② 영,호남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결한다.
③ 중앙당에 지원하는 국고 보조비를 없앤다.
④ 통일 후 남과 북의 갈등을 방지하고 한겨레로 화합할 수 있 다.

지금의 정당제도는 자신들이 집권 했을 때 만든 정책 즉, 노무현 대통령 때 체결한 한미 FTA 도 야당이 되고나니 이명박 정부에서 이를 시행을 하려니까“을사 늑약이다.” 라고 지껄여 대는데 국민들도 같이 건망증이 심해서 바로 엊그제 일도 잊고 여기에 부화뇌동한다.

우리의「한」민족의 근성은 원래“은근과 끈기”인데, 일제강점기와 연이은 동족상잔의 6,25를 맞고 나서 불안과 공포의 시련을 겪어서 그런지 은근과 끈기는 어디로 가고 냄비근성으로 빨리빨리 들끓다 바로 잊어버린다. 그래서 우리의 본성인“홍익인간사상”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은근과 끈기의 정신이 없었다면, 1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놈의 정당체제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여 야당이 되고나면 국가의 정책을 잘 세워 어떻게 국민들을 편안하게 할 것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상대당의 집권자가 실패하도록 방해만을 한다.

그래야 차기에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 밖에는, 다른 아무런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편안한 생활에는 정 반대로 국민들의 생활이 고달파야 자당의 존립이 보장되고 또한 차기를 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개념과 가치관 밖에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국민을 괴롭혀야 자당이 살 수 있다는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당을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다음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옛 왕정시대에는 사법도 입법도 행정도 모두 왕이 처리했다. 모든 권한을 왕이 쥐고 있었으며, 왕은 곧 나라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것도 대통령은 국가에 봉사하는 개념이 아니고 통치하는 개념이다. 모든 권한과 모든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 권한이 자신에게‘명예’가 아니라 오히려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멍에’가 되고 있다. 이번에 박 근혜 대통령의 출발에서도 그 현상을 여실히 보지 않았는가?

대통령의 임명권은 청와대 비서진만으로 축소하고 각 부처의 임명권은 부처장에게 넘겨야 된다. 그러므로 핵심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장관도 대통령이 임명해서는 안 된다. 장관을 국민이 선출해야 된다.

자- 여기까지 오면 독자들께서는“기상천외한 발상이다.”또는“황당하다.”고 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을 상기하시 바랍니다. 지금부터 필자가 전개하는 논리는 필자가 창안한 게 아니고 앞글에서 서술한 단군시대의 제도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단군시대와 지금 시대의 제도를 동일하게 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 시대가 바뀌었어도 지금의 시대에 맞게 적용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장관이라고 하는 자리는 그야말로 허수아비이고, 장관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장관은 대통령의 자리를 보전해 주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다. 야당에서는 걸핏하면 장관을 가라치라 하고 줏대 없는 대통령은 장관을 하나의 소모품정도로 취급한다.

장관에 임명되고 나서 그 부처의 업무를 다 파악하기도 전에 퇴장하는 장관도 많다. 이러한데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 나라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참으로 기적이다.

박 정희 대통령 때는 장관들이 그래도 자리를 오래 보전하여 우리의 경제성장을 이만큼 이끌어왔다. 지금의 행정업무를 보면 그야말로 해작질 하는 것이지 이 나라를 발전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게 아니다. 행정업무가 부실하여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제 이 양대 개혁의 제도를 구체적으로 정립을 한다.

① 대통령의 임기를 10년 단임제로 한다.
② 국회의원은 5년 무제한 연임제로 한다.
③ 장관은 5년 3선제로 한다.

대통령의 현행 임기가 5년 단임제는 무능한 대통령에게는 길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5년의 임기가 길다고 했다.

그러나 유능한 대통령에게는 5년이 너무 짧다. 하나의 정책을 추진하여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임기가 끝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의 백년대계의 정책을 수행 못하고 단계의 정책만을 수행함으로 졸속의 정책이 이루어진다.

먼저 선거를 ①국회의원을 선출하는데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하고 그 지역구에서 일정 주민들의 추천을 받으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국회의원을 뽑아서 국회의 원 구성을 하고 나서 6개월 후에 ②장관을 국민이 선출하는데 선거방식은 공영선거로 하고, 국회에서 철저하게 장관 후보자들을 청문회를 하여 그 후보자들의 자질을 검증한다. 이 때 후보자들은 모든 공약을 문서로서 국민에게 밝힌다. 지금은 언론매체가 잘 발달되었고, 소통도 원활하니 후보자의 자질과 소신과 인격을 국민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장관의 후보자들은 전국을 누비며 선거유세를 못하도록 한다. 철저하게 언론매체를 통하여서만 선거할 수 있다.

후보의 등록은 전 국민의 일정 인원의 추천을 받아서 등록을 한다. 이렇게 장관을 선출하는데 장관의 임기 내에 현격한 범죄행위가 없는 한 5년은 임기가 보장이 되고 유사시에만 보궐선거로 다시 선출한다.

각부는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신설 내지는 폐지 할 수 있다. 현행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부를 통폐합 내지 신설을 하는데 이렇게 朝令暮改(조령모개)식으로 하면 안 된다. 장관의 각 부가 구성이 되고 난 다음 6개월 후에 ③대통령을 선출 한다. 대통령은 유사시를 대비하여 부통령과 같이 출마를 해야 된다. 그러면 부통령의 후보도 인물이 출중하여야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획득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장관이 선출 하는데 대통령의 자질과 인격을 철저하게 국회에서 청문회로 검증한다.

이 때 대통령의 자질 중에 그의 국가관이 제일 중요한데, 후보의 국사인식과 「한」민족의 정신사를 모르면 즉,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을 모르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홍익화백주의는 敎政一致(교정일치)이므로 홍익인간사상을 모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후보 간에 TV에서 토론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자질을 알리고 후보의 등록도 마찬가지 일정 국민의 추천을 득해야 등록을 한다. 철저하게 공영선거로 하고 전국을 누비며 유세는 못한다. 장관의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 못하면 1,2위 후보를 결선을 하는데 일주일 이내에 국민의 투표로 결정한다.

대통령은 유사시를 대비하여 부통령도 같이 뽑았음으로 잔여임기는 부통령이 수행한다. 각부의 직원은 장관이 임명권을 갖는다.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은 전권을 행사하고 국정원,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 모든 정부의 공영기업은 대통령이 관장한다. 요즘 일부 좌익 집단들이 국정원을 해체하자고 지껄이는데, 이들은 절대로 국가관이 없거나, 아니면 이 대한민국을 해체하자는 주장과 같다.

현 시대는 지식정보화 시대이고 앞으로 지식정보화는 심화될 것인데 정보의 산실인 국정원을 해체하자는 주장은 나라의 눈과 귀를 막자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국정원,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의 기능은 더 강화해야 되고 더 능률적으로 조직화를 해야 된다.

이렇게 하면 대통령과 장관이 의논을 하여 국정을 이끌어가므로 공화정치가 이루어진다. 대통령의 독단이란 있을 수 없다. 현행 대통령이 국가의 모든 권한을 쥐고 관장하는 방식은 참으로 대통령을 지치게 한다. 대통령의 업무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챙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맡기고 잘못한다고 대통령을 욕해대는데 이것은 제도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고 국회에서 모든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사회단체나 기업집단이나 개인이나 모든 국민이 절대로 국회에 로비활동은 못하도록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해야 된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로비활동을 합법화하여 로비꾼들을 등록제로 한다는데 미국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예만을 들겠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개척자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광활한 땅을 개척하면서 거칠게 살았는데 그 때의 총기소지의 제일 큰 목적은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저항을 막기 위함 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개인의 총기소유로 이졌고 역대 대통령들이 총기소유를 규제하고자 하였어도 무기생산업체들의 로비에 가로막혀 아직도 개인 총기 소유를 근절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의 맹점이다. 개인총기소유가 매년마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사회의 불안조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정서를 삭막하게 한다.

이것을 부추기는 것은 오늘날의 인류문명이 모든 척도를 경제적인 가치관으로 해결함으로 인터넷에서의 게임문화가 자라나는 세대의 정신을 思惟(사유)와 思索(사색)을 안 하고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하게 유도함으로 미래의 우리 후손들의 세상을 상상하기가 두렵다.

이래서 현 인류문명의 게임문화는 버려야 된다. 또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로비 때문에 망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회에 로비를 단 한건도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제를 해야 된다. 이것은 홍익화백주의의 승패가 달린 문제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근본 질서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인류는 멸망을 할 것이다.

국회는 국가와 민족의 차원에서 나라 전체를 기준하여 대의로서 입법을 해야 된다.

다음은 사법부를 바로세우지 안의면 인류사회의 바른생활은 기대할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사법부는 비리와 부패의 원천이었다.

우리도 이에 예외일 수 없을뿐더러 한술 더 뜨고 있는 정도이다. 유전무죄이고 무전유죄라는 것은 지금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사법부의 법관들은 법률전문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국민에게 올바른 법집행으로 봉사하는 자세는 전혀 되어있지 않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관의 길로 들어서면 모두가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그 영광이라는 개념이 국민이게 봉사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국민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우리가 이조시대에 立身揚名(입신양명)이 孝之終也(효지종야)라는 즉, 과거에 급제를 하여 백성위에 군림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 효도의 완성이라는 개념에서 조금도 인식체계가 발전한 바가 없다. 이러하니 법관들에게 바른 법집행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는 기대할 수 없다. 한 마디로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법을 이용한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 즉 법을 팔아 돈을 버는,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밖에, 그 이상의 사회정의의 구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썩어 문드러진 사법부를 가지고도 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도 기적이다. 앞글에서 모든 것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로마제국도 초기에 ‘네로’라는 망나니 군주가 나왔어도 그 때 망하지 않고 1000년의 역사를 이룩한 것도 그 로마는 국운상승기류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기술 해 놓았는데, 우리가 지금 이 만큼 발전하는 것은 우리도 국운상승기류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발전하고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기 위하 여는 지금의 사법부를 이대로 두고는 절대로 안 된다.

지구촌 인류는 20세기에 참으로 많은 역사를 창출하였는데, 1,2차 세계대전을 치렀고, 인류역사에 가장 짧게 등장했다 사라져간 공산주의가 시작과 끝을 보였고, 양대 대전을 치르고 나서 인류는 전쟁의 참혹상을 알았고, 이제 3차 대전을 또 일으키면 인류는 종말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어 3차 대전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여 그 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국제 제도들을 만들어서 지금 불안하게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인류문명은 利己主義(이기주의)의 극치로 치닫고 있다.

이 이기주의는 오로지 승,패 만을 지향하는 것이지 協(협)-어울림과는 거리가 멀다. 이기주의는 승자도 고달프고 패자는 절망이다.

그러나 協(협)-어울림은“너와 나, 그 사람” 까지 행복하다. 그러나 우리의 법조계는 지금 이기주의 극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지 協(협)-어울림으로 가는 게 아니다.

법집행은 국민을 선도위주로 집행을 하여야 되는데‘힘’즉 권력이 있는 자와 돈이 있는 자에게는 법이 너그럽고, 권력도 돈도 없는 약자에게는 엄하다. 또한 교도행정이 참으로 잘못되어 있어서 교도소에 가면 그 사람이 교도가 되는 게 아니고 역으로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어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좀도둑은 강도가 되어서 나오고, 강도는 대도가 되어서 나온다. 피라미 사기꾼은 큰 사기꾼이 되어 나온다. 그러니 출소하면 얼마 못가서 또다시 들어가게 되고, 감옥에는‘빵잽이’라는 게 있는데 이들은 감옥소가 자신들의 본 집이고, 잠시 외출(출소)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이 반복된다. 한번 감옥에 가면 다시는 가지 않는 선도의 교도행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거기에 가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들도록 법집행을 하기 때문이다.

법집행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사례들을 나열할 수 있지만 생략하고 이 사법부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가를 기술하겠다.

이것은 혁명적인 발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먼저 사법고시가 법률 전문가를 뽑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근본은 법률전문가이지만 법집행을 올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었는가를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야 된다. 그 방법은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정신인 홍익인간사상을 시험과목에서 비중 있게 치르면 된다. 이 과목을 1회로 설정하여 이 과목을 통과하지 못하면 법관이 될 수 없다.

또 전관예우라는 것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데, 그래서 판,검사를 마치고 나면 변호사 개업을 하여 1,2년 안에 수십억을 벌지 못하면 그 사람의 법조계 인생을 실패라는 이러한 사회풍토는 척결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판,검사를 퇴직한 그 지방에서 반경 100KM 내에서는 사건 수임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화를 해야 된다. 또한 법관의 재직 시 범법 행위를 하여 퇴임한 자들에게는 변호사 개업을 못하도록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여야 된다. 변호사도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 온 자들은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여야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의를 외쳐보아야 공염불이다.

이 법조계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 법조계 주변에서 기생하고 있는 사건“브로커”이것을 일망타진하여 대청소를 해야 된다. 이것을 대청소하지 않으면 법조계를 절대 바로세울 수 없다.

법관이 된 처음에는 더러 정의감이 불타는 법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백지가 먹물에 가까우면 먹물이 묻는다.”“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정의감이 있더라도 현 자본주의 사회의 풍토에서는 돈보고 싫다고 할 사람이 있는가? 처음에는 작은 액수로 시작하지만 그것이 회수가 반복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인식 못할 것이다. 그래서 법조계주변의 브로커들을 대청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법부를 바로 세울 수 없다.

그 대청소 하는 방법은 검찰로는 절대로 안 되고, 그것은 고양이한테 생선가계 맞기는 격이 될 것이니까. 경찰로도 역부족이다. 경찰은 검찰 보다 힘이 약하니까. 안 되고 그러면 대통령의 특명으로 특별 조직을 한시적으로 브로커 대청소를 완성할 때까지 만들어야 된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사법부를 바로 세울 수 없고 사법부가 바로서지 않고는 우리사회는 바른 사회가 될 수 없다.

법조계주변의 브로커를 일망타진해야 되듯이 정치계 주변의 로비 자들도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인류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차원에서 시행을 해야 된다.

언론계의 부패도 묵과할 수 없는데 언론계는 어떻게 개혁을 해야 되는지 에는 필자가 식견이 부족하여 생략하고, 하나의 예만을 들자면 자동차 두 대가 접촉사고를 냈는데, 지구대에 언론사의 기자를 데리고 들어가면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뀌는 수가 있다.

도대체 경찰은 기자들에게 무슨 약점을 잡혔는지, 마치 기자가 경찰의 호랑이라도 되듯이 일이 엉망으로 처리된다. 이런 사례는 필자가 목격을 한 바이다.

우리사회에 자고로 사회의 지도층들이 서민과 약자위에 군림하는 것에는 익숙하나 그 약자들의 애환을 어루만져주는 지도층은 참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밖에 없다.

홍익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석도 온전한 곳은 없고 모두가 구린내만 난다. 이러한데도 나라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인류가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사회 까지는 그래도 情緖(정서)가 공유되었으나 지금의 디지털시대 지식정보화의 시대에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정서가 같지 않다. 신세대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문화는 게임문화이다.

게임 중에도 바둑정도면 인간의 지혜를 계발시켜주는 게임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인터넷에서의 게임은 치고 박고 싸우고 죽이는 그야말로 살벌한 게임밖에는 없다. 이러한 문화에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인간의 정신이 젖어들어 그야말로 인간을 별종의 세계로 유도하고 있다.

이 게임문화는 임기응변의 순발력은 기를 수 있을지언정 思惟(사유)와 思索(사색)을 하여 정서를 고양시켜주지는 못한다. 이러하니 젊은 신세대는 순발력 있는 잔꾀에는 능하나 인간의 본성인 人間美(인간미)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이 시대의 변화는 앞으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옛날에 100년의 변화가 지금은 10년도 못가서 딴 세계가 이루어진다. 참으로 인간의 변화가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저의 글을 받아 보시는 독자님들께 호소합니다.

지금 우리 기성세대에서 인류의 情緖(정서)를 바로 세워 나아갈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 후손들의 세상은 참으로 상상하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이 현실의 삶에 급급하여 자신의 사후에 사랑하는 후손들의 세상을 걱정하지 않는 다면 지금의 나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현 인류사회의 게임문화는 버리자고 외치지만 인류가 깡패조직인 폭력집단을 근절을 못하듯이 이제 이 게임문화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정서가 메마르고 삭막해져 가는 인류사회에 이것을 다시 일깨우고 이것(情緖)에 자양분을 공급해줄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인류에게 전개하면 될 것이다.

독자여러분 그것이 바로“홍익인간사상”인 것입니다. 홍익인간사상을 유치원 때부터 반복하여 기독교에서 그들의 교리를 반복 세뇌교육을 하듯이 반복하여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에서 교육을 하면 우리의 후손이 멸망하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을 펼쳐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이 통일된 조국에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껏 강의의 글을 내보냈는데 저의 글을 따라오지 못하는 분들이 80% 이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치원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것은 저의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많은 학자들의 협조가 필요 합니다. 또한 제일의 관건은 정치를 하는,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때는 이제 인류의 대 전환기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인류는 소련이 스스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이로 전환하면서 냉전의 시대를 끝내고 대화의 시대를 맞이하였으나 아직 평화의 시대는 개화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평화의 시대)을 우리「한」민족에게 이루어 내라고 하늘에서 내린 使命(사명)입니다.

우리「한」민족이 아니면 이를 해낼 가르침과 학문이 지구촌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촌에 현존하는 二元論(이원론)의 문화를 가지고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원론을 버리고 一元論(일원론)의 문화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가 사는 길입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의 현실은 民主主義민주주의 의 限界한계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현 民主主義는 지금 夕陽석양의‘노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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