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찬희 칼럼니스트>

[칼럼=LPN로컬파워뉴스] 박찬희 칼럼니스트, 장관을 선출하였다.

◉ 弘益和白홍익화백의 政治정치

지금부터의 설명은 고정관념과 기존상식을 내려 놓으셔야 따라 오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그래도 잘 발달하여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들도 대통령 또는 수상이 수하의 모든 공직을 임명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지방자치제가 있어서 그 지방자치 장은 선출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 지방자치장도 모두가 중앙에서 임명을 하였다.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장관을 임명하고 그 장관은 대통령의 지휘 하에 업무를 수행함으로 장관의 재능은 발휘 될 수 없다.

장관은 대통령의 임기를 보필하는 보좌역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면 장관을 경질하여 분위기를 바꾸는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 (이 유치한 짓이 언론과 사회에서도 통용이 된다.)

지금은 그래도 민주주의라고 이정도이지만 과거의 왕권전제주의 시대에는 전 국토 나라전체가 왕이 주인이었다.

오늘날 각 지방의 특산품을 말할 때에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선전의 문구로 활용한다. 이조시대의 사극을 보면 임금이 옥좌에 앉아서

“짐의 말이 곧 법이니라.”라고 거들먹거린다. 왕의 기분에 따라서 모든 蠻行(만행)이 통용이 되었다.

인류역사에 폭군의 대명사였던 네로의 만행은 인류가 기억하고 있다.

이것들은 우주의 법칙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짓들이었다. 그러나 神은 이들을 즉결처분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역사이지 神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오늘날의 종교들은 깨달아야 한다.“ 惑世誣民(혹세무민)은 그만하고...

官無兼權 政無越則 官(관)은 권력을 겸하지 않고

관무겸권 정무월칙 정치는 법을 어기지 않는다.

우리의 조상은 5910년 전 부터 이렇게 정치를 해 오셨다.

그런데“짐의 말이 곧 법이니라.”이러한 정치는 퇴보를 한 것이다.

앞글 25번의 단군조선 역대표를 보면 21대 蘇台(소태) 단군까지는 단군도 추대를 하고 있다. 물론 표에서는 20대 固忽(고홀) 단군의 태자로 되어 있지만 이때까지는 태자라도 그 인물이 출중하여 백성들이 추대를 하여야 단군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대목을 오늘날의 상식으로 받아드리기 어려울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조상들의 역사이므로 이를 받아드리지 못하면 우리의 상고사를 이해 할 수 없다.

앞 21번의 글에서도 기술 하였듯이 삼장(풍백, 우사, 운사)은 임명하고, 오가(우, 마, 구, 저, 양가) 장관은 백성이 선출을 하였다.

그러니까 삼장은 단군의 보좌관 지금 말로하면 대통령의 비서진이다.

오가장관은 각 독립된 직무가 있었고 백성이 선출을 하여야 그 지위에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이 임명을 할 수도 해임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단군도 오가장관과의 衆議一歸 爲和白(중의일귀 위화백; 모든 의견을 수렴하는)회의로서 안건을 채택하여 정책을 수행 하였다.

앞글 25번 단군의 역대표를 보면 1세 왕검 단군 2세 부루, 3세 가륵, 4세 오사구 까지 2, 3, 4세는 태자로 이어지나 이도 세습을 한 게 아니고 그 태자들이 인물이 출중하여 추대를 받아서 단군의 지위에 오른 것이고, 5세 구을 은 羊加(양가)가 추대되고 있다. 다음 6세 달문 은 牛加(우가)가 추대되고 7세 한속 은 다시 羊加(양가)이고, 8세 우서한 은 ?표로 되어있고, 9세 아술 은 태자가 추대되고, 이렇게 하여 21세 소태 단군 까지는 장관과 단군 모두 선출과 추대로 이어오다가 22세 단군 색불루 에 와서 항명 즉, 쿠데타를 하여 이때부터 단군 은 세습으로 이어지나 오가장관은 그대로 선출로 이어지고 44세 단군 구물 은 受命(수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43세 단군 물리 의 지명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43세 물리의 후손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22세부터 47세 까지 단군은 세습을 하여도 오가장관은 선출을하여 공화정치를 하였다.

그래서 공화정치를 한 47세 까지를 고조선으로 보고 그 연대가 2096년이다.

뒤 글에서 자세히 기술 되지만 忠과 孝의 개념이 儒學(유학)에서는 忠은 백성이 임금님에게 孝는 자식이 보모에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弘益思想(홍익사상)의 忠은 영도자인 단군도 나라에 忠을하고 집안의 부모도 가정에 孝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까 백성의 忠의 구심점은 나라이고 가족의 孝의 구심점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弘益精神(홍익정신)을 高趣(고취)시키면 愛國愛族(애국애족) 정신이 자연스럽게 사라난다.

단군시대의 정치 이념은 弘益和白(홍익화백)으로서

一無憾且怫異者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지

일무감차불이자 않게

衆議一歸 爲和白 모-든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

중의일구 위화백 제도

로서 47대 2096년을 이어왔고 단군이 한웅의 통치이념을 계승했음으로 한웅 18대 1565년과 한웅은 또한 한인의 통치이념을 계승했음으로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홍익화백의 인류평화의 이념이다.

한웅이 한인의 유지를 받들어 태백으로 3,000의 동지를 이끌고 내려올 적에 다시는 싸우지 말고 평화의 세계를 이룩하라는 사명을 받고 태백에 왔음으로 태백의 원주민과 전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화된 선진문명을 가지고 와서 미 개화된 족속들을 개화시켜

사이좋게 서로 돕고 살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지도자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밀고 들어가 원주민“힉소스” 민족과 300년 이라는 긴 세월을 피비린내 나게 전쟁을 했던 역사와 비교가 되는가?

오늘날 우리의 같은 단군의 자손 이면서 이 유태인의 選民思想(선민사상)인 唯一神思想(유일신사상)에 빠져서 우리를 유태인의 족보에 갖다 이어붙이 려고 발광을 하는 자들을 어떻게 구제를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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